파란 대문에 관한 기억 / 최문자
막다른 집에서 꽤 오래 산 적이 있다.
헐어빠진 나무 대문들을
희망처럼 보이게 하려고
페인트로 파랗게 칠을 했었다.
대문의 나뭇결은 숨을 그치고
그날부터 파랗게 죽어갔다.
늦은 밤 돌아와 보면
길고 좁은 골목 마지막 끝에
자기 그림자 꼭 껴안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
그런 흔들림으로 서 있던 파란 대문
그 대문을 바라보고
가끔 생각난 듯 개가 짖어댔다.
덧바른 낯선 색깔을 알아보고 짖어댔다.
어느 날은
죽은 나무대문이 다시 나무로 살아날 것처럼
사정없이 짖어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긴 골목도 없이 나를 막아서는 802호
지금은 거기에 산다.
열쇠를 돌리려면 한참씩 문 앞에서 달그락거리지만
잠긴 저 안은 언제나 쇠처럼 고요하다.
하루 종일
이 색깔 저 색깔로 덧칠당하고 돌아온 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희망처럼 보이는 푸르딩딩한 폐허를
아무도 짖어대지 않는다.
사라진 개를
찾아나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