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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詩句 하나에 ‘감전’… 난 죽었고 다시 태어났네 !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김수영, ‘비’에서)
누구나 젊은 시절에 가슴을 요동치게 했던, 오래 잊어지지 않는 시구(詩句)가 한 두개씩은 있다. 감성의
경락(經絡)이 운명적으로 ‘파르르’ 열려있는 시인들에게야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시인들의 영혼에 인두로
지진 듯 남아있는 시구가 얼마나 많겠는가.
계간 ‘시인세계’는 한국의 시인 109명에게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하나씩 꼽아달라고
물었다. 강은교, 김규동, 김남조, 김종길, 정진규, 천양희, 신달자, 문인수, 안도현, 유홍준, 황병승, 문태
준 등 원로시인에서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시인의 운명으로 몰아간 시구는 각자의 개성만큼이
나 다양했다. 우리 시인들의 감성을 전율케 한 대표적 시구들은 달리 말해 한국인의 감성코드와 맥이 닿
아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시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최고의 시구’의 주인공은 김수영 시인(14명)이
었다.
◆ 최고의 시구…10인
장석주 시인은 “놀라워라,‘움직이는 비애’라니! 비와 비애의 음가(音價)가 겹치면서 한순간에 눈이 번쩍
뜨인다. 비의 운동역학에 ‘湊煉??슬쩍 얹는 솜씨라니!”라고 김수영의 ‘비’중 한 구절에 찬사를 보낸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김수영 ‘사랑의 변주곡’에서)를 최고의 시구로 꼽
은 나희덕 시인은 “욕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는 그의 전언은 혼란도가
낮은, 그리하여 폭력적 질서에 갇혀 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깨우는 말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한다.
두번째로 서정주 시인(9명)의 시가 많이 선택됐다.
“서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추천사’에서)를 선정한 허영자 시인은 “인간의 한
계-유한한 목숨과 의욕에 못따르는 능력의 한계, 찬란한 꿈에 비한 현실의 초라함 등을 이 한 구절은 절
실히 감지케 한다”고 말한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자화상’에서)에 대해 고두현 시인은 “어디 ‘스물세 해 동안’뿐이랴. 지금
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던 청춘 시절부터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
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캄캄한 절망조차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듯이…”라고 얘기한다.
정지용 시인(7명)은 ‘백록담’중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는 구절이 선택됐다. 허만하 시인은 “아름다움은 무서움의 시작이다”라고 압축해 평가한다.
이상과 백석 시인(각 6명)도 선호됐다.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이상 ‘아침’에서)
“그가 노래하는 병든 내면은 당시의 나의 내면이고 그후 나는 이상의 정신적 가족이 된다. 그는 폐결핵으
로 시달리는 밤을 노래하고 이런 밤은 당시의 어둡던 가정, 나약한 감성, 우울한 사춘기의 은유가 된다.”
(이승훈 시인)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
가 있다.”(‘모닥불’에서)
“모닥불 속에서 우리 민족사의 상처와 불구성을 읽어내다니…, 나는 미친 듯이 백석의 작품을 모았고, 마
침내 분단 이후 최초로 한 권의 전집을 발간하였다.”(이동순 시인)
이밖에 윤동주 김종삼(각 5명), 김소월(4명), 한용운(4명), 이성복(4명) 시인 등이 10위권 안에서 선정되
었다.
◆ 무엇이 전율케 하는가
109명의 시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순위의 10위권만 살핀다면, 생존시인은 이성복 시인 한 명이다. 달
리 말하면 ‘젊은 시절’에 영향을 받은 시가 오래 기억된다고 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정효구(충북대 국문과)교수는 “시인들의 생을 바꾼 ‘감전 체험’의 절정으로 엄습한 것은 이
땅의 근대 및 현대시의 정신이 요구한 지성과 부정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한 시
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가 일반인이든 시인이든간에 그 자신의 개인의식은 물론 시대가 가진 집단의
식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으며 한 인간의 감전 체험이란 것은 바로 이런 의식 전체의 문제와 관
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김수영의 많은 시편이 선정됐고 이상과 정지용과 김종삼 등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 “이
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지적인 시인에 속한다는 점”이라면서 “그들은 서정을 말하더라도 반성적, 지적 사
유가 내재된 서정을 말함으로써 고전적인 서정과는 구별되는 현대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
이 현대의 굴곡진 역사속에서 그 같은 서정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황상민(연세대 심리학과)교수는 “황홀한 절정을 맛보게 하는 시구란 ‘한 줄의 시구’가 만들어내
는 마음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 살았던 시대의 반영이자 시인이 그토록 찾았던 ‘그 무엇’”이라며,
시인들이 꼽은 시구들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구로 각인된다”
고 분석했다.
(문화일보에서)
출처 : 수연까페
글쓴이 : 길건너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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