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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태백풍경

무아. 2010. 3. 14. 00:24

풍경이 풍경을 만났을 때
강원도 태백 ‘4色 풍경’속 게으른 사색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귀네미마을 고랭지 채소밭. 구릉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조형적이다.

예수원의 이국적인 건물들. 유럽의 수도원을 연상케 한다.

나뭇잎을 모두 떨군 자작나무. 반들반들한 흰색 수피가 아름답다.

침엽수림을 끼고 있는 광동호. 낙엽송이 밝은 노란색으로 물들고 있다.
# 황토 구릉 초록 호밀

호밀밭이라고 했다. 태백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삼수령 피재를 넘어 삼척 하장쪽으로 향하는 길. 그 길에서 진초록빛을 만났다. 태백의 국도는 다른 지방의 길과 느낌이 다르다. 국도에서 잔가지처럼 갈라진 샛길은 산을 휘감고 돈다. 산자락의 구릉은 모두 고랭지 배추밭. 그러니 거미줄처럼 이어진 이쪽의 샛길은 배추를 실어내가는 길이다. 이미 올 한해 농사가 마무리된 샛길가의 구릉들은 갈아엎은 황토색 흙이 대부분이지만, 군데군데 초록빛으로 출렁인다. 초록빛으로 일렁이는 곳은 모두 호밀밭이다. 호밀은 배추농사를 끝낸 뒤 지력을 돋우기 위해 미국 등지에서 수입해다 심은 것. 이듬해 봄까지 길러낸 뒤 호밀을 수확하지 않고 통째로 갈아엎으면 훌륭한 비료가 된다. 더러는 소먹이로도 이용된단다. 이렇듯 호밀은 이듬해 배추농사를 위한 효용으로 심어놓은 것이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마치 조경의 목적을 위해 심은 것처럼 아름답다.

어디선가 본 듯한 초겨울의 풍경. 그러고 보니 눈내린 알프스산 자락의 목가적인 전원마을을 장식하는 초록색도 모두 이 호밀이었지 싶다. 지금 일찍 씨앗을 뿌린 밭에는 호밀이 이미 무릎까지 올라와있다. 발목까지 호밀이 자란 밭은 마치 고운 양잔디를 심어놓은 것처럼 운치가 넘친다. 구불구불 호밀밭 사이로 걷자면 계절을 거꾸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도 충분히 이국적이지만, 머지않아 태백의 산등성이에 눈이 내리면 흰 눈과 진초록의 호밀밭이 더 독특한 경치를 만들어내지 싶다. # 이국적인 풍경 다섯…높새바람에 힘차게 도는 풍차.

태백시에서 삼수령을 넘다보면 왼쪽으로 만나는 산이 매봉이다. 정선에서 태백쪽으로 두문동재를 터널이 아닌 산길로 넘노라면 더 환히 보이는 봉우리. 그 매봉에는 풍력발전기 8기가 우뚝 솟아 있다. 풍력발전기야 선자령일대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쪽의 풍경은 좀 색다르다. 발전기가 들어선 동쪽 사면이 대규모 고랭지 채소밭이다. 1962년부터 조성됐다니 벌써 45년이나 해발 1250m에 위치해 전국에서 가장 고도가 높고, 면적 또한 최대의 배추밭이다. 한 해 평균 이곳에서 실어내가는 배추만 600만포기가 넘는다. 풍차는 배추밭의 정상에서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봄이면 태백산맥을 넘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이 풍차를 지나며 수분을 다 내려놓고, 반대편으로 고온건조한 바람이 돼서 불어나간다. 또 겨울에는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 풍차를 넘어 동해안쪽으로 넘어오면서 매서웠던 바람 끝이 무뎌진다. 겨울 동해안이 서해안보다 기온이 높은 이유가 바로 이 높새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은 기온이 워낙 낮아 보통 5월말부터 배추농사가 시작돼 8월말이면 수확이 모두 끝이 난다. 9월부터 이듬해 5월말까지는 길고 긴 겨울인 셈이다. 그러나 일없이 버려진 엎어놓은 함지박 모양의 배추밭 구릉에는 모진 바람을 이기고 자라는 초록색 덩쿨잡초들과 군데군데 심어진 호밀들로 이즈음도 푸르다. 바람은 끝없이 펼쳐진 구릉위를 우우 몰려다니다 풍력발전기의 풍차를 힘차게 돌려대고 있다.

# 낙엽송 자작나무숲

태백의 아름다운 초가을 풍경의 절반쯤은 낙엽송이 만들어낸다. 낙엽송은 소나무처럼 생겼으되 낙엽이 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둥치가 쭉 뻗고 삼각형의 수형을 이루는 낙엽송은 푸른 빛일 때도 아름답지만, 잎이 질 때 더 낭만적이다. 노란색 혹은 밝은 갈색으로 물드는 낙엽송은 햇빛을 받으면 색깔이 다채롭게 변한다. 특히 그림자가 길어지는 석양 무렵, 노랗게 빛이 내릴 때 반짝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낙엽송은 도시 근처에도 흔한 나무지만, 한그루 한그루의 모습보다는 군락을 이뤄 노랗게 물들 때 장관을 연출한다. 태백의 산에는 이런 낙엽송이 도처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통째로 산 하나가 낙엽송으로 뒤덮여있는 곳도 있고, 어떤 곳에는 솔숲에 심어진 낙엽송 군락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는 것처럼 숲에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낙엽송의 아름다움에 비견할 만한 것이 옷벗은 자작나무들의 자태다. 태백쪽에는 자작나무숲이 흔하다. 소나무숲과 낙엽송숲에 자작나무들을 줄지어 심어놓았다. 줄지어선 자작나무들은 이미 모든 잎을 떨구고 흰 수피를 드러내놓고 있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바늘과 같은 낙엽송의 둥치며 가지들이 낙엽송의 노란빛과 어우러지면 마치 북구의 어느 나라 숲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낙엽송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적으로 보자면, 하장에서 멍애산 자락을 넘어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424번 지방도를 넘어보면 된다. 사북까지 이어지는 이쪽 길에서 오두재를 넘는 길에는 한쪽 산 사면이 모두 낙엽송이다.

둔전리 못미쳐서 차를 대놓고 바라보면 수만개의 침을 꽂아놓은 듯 곧게 뻗은 낙엽송들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낙엽송 숲 중간중간 자작나무숲이 펼쳐져 독특한 풍광을 빚어낸다.

#산골마을 유럽풍 수도원

태백의 산골마을에 들어선 예수원은 유럽의 수도원을 연상케 한다. 우선 들어선 건물의 모양이 그렇다. 돌로 지어낸 장중한 건물과 나무로 짠 지붕에 짚을 엮어 얹은 모습은 한눈에도 유럽풍이다. 외국의 관광엽서에서나 보던 모습이다. 이런 이국풍의 건물이 덕항산 자락의 초겨울 풍경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예수원은 1965년 미국 성공회 신부인 고(故) 대천덕(미국명 루벤 아처 토리 3세) 신부가 세운 공동체다. 노동과 기도의 삶을 위해 신도들이 모여 자급자족의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원이다. 지금도 오지로 꼽히는 덕항산 자락이 40여년 전에는 오죽했을까. 오지 중의 오지에 세운 예수원의 의미는 비신도의 눈으로는 잘 가늠할 수 없지만, 이곳에 들면 왠지 엄숙하고 장중한 느낌이 앞선다.

사실 이곳을 소개하는 것은 참 조심스럽다. 비신도들에게도 개방돼있는 곳이지만, 자칫 여행의 즐거움에 목적을 둔 사람들이 찾아갈까 걱정되는 탓이다.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었다지만, 수도의 공간인 이곳은 먹고 놀기 위한 여행자들은 물론, 단순히 숙소로 묵어가려는 사람들도 사절하고 있다. 적어도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삶을 성찰하려는 목적을 가진 손님들만 받고 있다. 주말 방문은 불가능하고, 반드시 2박3일 기간만 묵을 수 있다. 하루 세번 있는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지킬 수 있다면, 고요한 휴식을 체험할 수 있다. 도회지에 두고 온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이란 이름의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 일. 또 산책로 끝의 야외 기도처에서 나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일. 꼭 가톨릭 신도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 속에서 헝클어진 생각이 정리되고, 투명하게 비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침엽수림 고요한 호수

삼척시 하장면에는 광동호가 있다. 지난 1990년에야 담수가 끝난 저수지다. 해발 904m의 지각산 자락에 가두어진 호수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워낙 지대가 높은 곳이라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 대부분이 소나무, 전나무 등 침엽수들이다.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호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광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민들은 인근의 귀네미마을로 이주했다. 귀네미마을은 삼척의 환선굴이 있는 덕항산의 반대편 자락으로 마을은 해발 950m에 들어서있다. 과거 화전민들이 살던 곳이라는데, 오래 전에 사람들이 떠난 뒤 수몰민들이 이주해 이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귀네미마을 입구의 표지석에는 ‘일출이 아름다운 곳’이란 글이 쓰여있다. 이렇듯 깊은 산속의 마을에서 어찌 일출이 보일까.

귀네미마을 주민들은 고작 24가구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경작하는 배추밭은 99만여㎡(30여만평)에 달한다. 이미 수확이 끝나 뻘건 황토흙을 드러낸 곳도 있고, 호밀이 심어져 초록빛 싹을 틔운 곳도 있다. 구릉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오르면 해발 1200m에 달하는 ‘큰재’다. 이 고개로 가는 길에는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밭 한가운데 운치있게 서있다. 나무를 지나면 앞이 툭 트이는 풍광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동해안 정동진보다 1분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 맑은 날, 이곳에 서면 신새벽을 마주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을 주민 정덕화(70)씨는 “큰재에 올라가면 50리 밖에 있는 삼척항과 오십천이 발아래로 보이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거대한 해가 뜨는데, 자랑할 만하다”며 “신년 첫날에는 태백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려고 여기로 찾아온다”고 했다. 이곳에는 또 달이 뜨는 모습도 장관이라고 했다. 쟁반보다 더 큰 붉은 달이 불쑥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장관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고 했다.

태백·삼척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초겨울 마중가는 길 이국적 봄을 만나다
태백 35번 국도의 색다른 풍경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태백의 노장골에서 마주친 초록빛 호밀밭. 혹독한 태백의 겨울 추위에도 호밀은 내내 이렇듯 초록으로 자라 이국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뒤로는 노랗게 물든 낙엽송과 청청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으로 가득한 산에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풍경에 그만 허를 찔리고 말았습니다. 해마다 섬진강변 하동의 매화꽃에서 봄소식이 시작된다면, 겨울은 하얗게 서리가 내린 태백의 새벽에서 시작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겨울을 마중하러 간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태백의 산간마을의 넓게 펼쳐진 진초록 호밀밭 앞에서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단풍도 다 떠나보낸 계절에 이렇듯 성성한 진초록의 이국적인 풍경이 남아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또 겨울 초입에서 만나는 진초록이 이렇듯 감격적인지도 미처 몰랐습니다. 누가 이 풍경을 초겨울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태백에서 삼수령과 검룡소를 지나 하장 쪽으로 향하는 35번 국도. 그 길에서는 이런 복병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좀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알프스의 산골마을’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도시의 가로수도 마지막 잎을 떨구고 있는데, 태백의 산간마을에는 이제 단풍이 다 끝났지 싶었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가장 화려한 낙엽송의 마지막 잔치가 남아있었습니다. 이제 막 밝은 노란 색으로 물드는 낙엽송들이 산아래쪽부터 촘촘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별 볼 것이 없지만, 멀리서 군락을 이룬 낙엽송의 숲을 내다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거기다가 잎을 다 떨군 자작나무의 반들반들한 흰색 수피가 날카로운 금속성 바늘처럼 서늘하게 서있는 풍경도 이국적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국적인 풍광으로 말하자면, 스위스의 산악 마을과도 같은 정취를 가진 하사미동의 예수원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미국 성공회 사제인 고 대천덕 신부가 설립한 성공회수도원인 예수원은 마치 유럽의 어느 마을에서 뚝 떼어다가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공회 신도들은 물론 비신도들에게도 문을 개방하고 있는 이곳은, 그러나 경치나 풍류를 즐기기 위해 찾아갈 곳은 결코 아닙니다.

이곳을 찾으려면 자격이 필요합니다. 이곳은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스스로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비로소 자격을 갖추게 된 겁니다. 그럴 때 이곳에서 조용히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성공회 신도들과 함께하는 노동과 기도, 묵상 또는 침묵. 마음이 움직인다면 육체 노동을 함께해도 좋고, 침묵의 시간에 동참해도 좋습니다. 꼭 신도가 아니더라도 이른 새벽 ‘십자가의 길’이란 이름이 붙은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작은 개울을 끼고 있는 나무 십자가앞 돌제단에서 무릎을 꿇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태백의 산중으로 더 깊이 들어 찾아간 ‘귀네미 마을’도 그랬습니다. 마을 뒤쪽으로 수확이 다 끝난, 끝간 데 없는 고랭지 채소밭 구릉 위로 오르는 길. 구불구불 조형미가 넘치는 길은 산 너머쪽에서 슬금슬금 밀려온 안개로 가득찼습니다. 그 푸른 안개 속에서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생소한 아름다움. 그렇습니다. 태백에는 이렇듯 생소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습니다. 초겨울, 태백으로 가는 길. 그 길에서 줄곧 김종삼 시인의 시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 가난한 아이에게 온 / 서양 나라에서 온 /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 진눈깨비처럼’ <김종삼 ‘북치는 소년’ 전문>. 이즈음의 태백의 풍경이 꼭 이렇습니다.

태백·삼척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글쓴이 : 무심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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