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스크랩] 편지(아래 6755번 답장)

무아. 2010. 3. 13. 09:16



공자 형님, 구구절절 너무 아픈 얘기네요.
형님의 답답한 심정 십분 이해합니다. 어찌 보면 애정이 깊을수록, 기대가 높을수록 복장 터지는 건 당연지사일 겁니다.
지금 우리 산악회가 침체됐다고요? 저도 죽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만, 자격 미달인 것 같아 미뤄온 것을 형님에게 직접 들으니 기분이 착잡합니다. 솔직히 우리 산악회 살림살이는 요 몇 년간 답보 상태인 것 같습니다. 뭐 'IMF 상황'은 아니지만 최소한 발전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죠. 계음으로 따지자면 '파' 정도.
누구 책임이냐고요? 글쎄요, 누군들 그 책임의 화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아래에서 형님이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셨는데 누가 감히 형님을 탓한단 말입니까? 괜한 자격지심이겠죠. 형님만큼 이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형님의 산행 경력과 그 해박함의 정도, 삶을 읽는 혜안은 정말 탁월합니다. 언젠가 앞서도 얘기했지만 거듭 경외심을 느낄 만큼요.
저는 형님만큼 뜨거운 불을 품은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젊은 날 한때 뜨거운 편에 속하는 부류였는데, 도대체 미지근하게 구는 건 딱 질색하는 쪽이어서 남에게도 호,불호를 정확히 요구하곤 하다가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었죠.
사실 형님의 카리스마가 자칫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까 쓸데없이 걱정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 정확하고 빈틈없고 투철하고 색깔이 강해서 저는 오히려 좋습니다. 이 점은 조직 운영에 차라리 장점이면 장점이었지 그리 단점은 아닌 듯합니다.
저는 사실 우리 산악회에 대한 관심이 좀 각별한 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를 아실 분은 아실 것 같아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한데 지방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아빠이며, 직장 일의 특수성 때문에 매 산행을 따라나서기가 벅찹니다. 산행의 욕구 불만을 카페 활동으로 대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닌게아니라 저도 요새 일없이 짜증이 나는 편입니다.
내가 이렇게 산악회를 쥐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책임감 때문일까. 애정 때문일까, 아니면 그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그 다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내게 그렇게 소중한 것일까, 하고요.
내가 무슨 거창한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보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것도 세상에 흔하디 흔한 산악회에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사실 안성 평택에도 산악회는 널렸는데 굳이 서울까지 오갈 필요가 있는 것일까... 정작 번개를 뛰기도 힘들고, 정모를 갖기도 힘든데 이 산악회에 목메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고요.
그런데 알 수 없는 게 사람일인가 봅니다. 그냥 아직까지 맘이 가는 걸 어떡합니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할 수가 없는 것이겠죠.
형님,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어쨌거나 기왕 하는 일, 좀 신명나게 산을 다닐 수 있는 법이 없을까 궁리해 봤습니다. 자격없는 줄 알지만,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전직 회장으로서 그동안의 생각을 뭉뚱그려 봤습니다.

먼저 회원간의 생각의 차가 있을 수 있으니 그 점을 널리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논쟁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공유에 그 목적이 있음을 밝힙니다. 부족하더라도 행간의 뜻을 많이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부디...

산악회 활성화를 위한 방안

첫째, 산행을 정기산행이나 한남정맥 종주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번개를 일부러 제한할 필요는 없지만 그 번개가 정산이나 한남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면 의식적으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정산 전 주에는 되도록 산행을 피했으면 합니다. 정산은 우리의 생명이자 원동력입니다. 정산이 펑크난다면 영영 회생 불가능합니다. 정산에서 흑자 운영이 되지 않으면 사실 우리 조직은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까놓고 얘기해서 매 산행마다 차대비+30% 이상 뽑아야 합니다. 돌부처가 아닌 이상 어느 일꾼이 적자 내는 산악회에 몸바쳐 일을 할 것이며, 누가 적자 내는 산악회에 맘 편히 몸담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그 점부터 우리는 타 산악회와의 경쟁에서 1보 이상 뒤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산악회는 안내산악회와는 달리 태생부터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회원들의 산행 요구나 수준이 매 산행을 담아낼 만큼 충만한지 재고해 봤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좀 부담스런 면이 있지 않은가요? 공지를 했는데 나오는 사람이 없다고 무작정 한탄할 것이 아니라 혹시 이 옷이 우리 몸에 너무 버겁고 헐거운 것은 아닐까, 그 점까지도 생각해 보자는 거죠.
그리고 정산은 테마 산행을 하되 대중적으로 인기도가 높은 명산 위주로 갔으면 합니다. 기타 산행 요구가 높은 소수자의 불만은 한남이나 번개로 메워 갔으면 합니다.


둘째, 기존 회원들을 꾸리는 작업을 합시다.
옛날 그 많던 회원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대개 몇 개월 연속으로 안나온 후부터 슬며시 교류가 끊긴 건 아닌가요? 그들이 카페에 안 들어오니 달리 방법이 없다고요?
명단을 뽑아서 운영진이 지속적으로 챙기면 됩니다. 요즘은 메일도 믿을 게 못 됩니다. 워낙 스팸메일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 무심히 흘려버리는 데다 메일도 수신거부로 설정해 둘 수도 있거든요. 정성을 다해 전화, 또는 전화 메시지를 보내면 1년에 한번 이상은 나옵니다. 그리고 손에 손잡고 나오는 사람 꼭 생깁니다. 확신합니다.


셋째, 현 회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합시다. 우리 회원들의 성향을 정확히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는 쪽과 소극적이거나 관망하는 쪽 말입니다. 전자인 열성파 회원은 따로 챙길 필요 없습니다. 그들의 눈높이는 오직 산행만 만족하면 되니까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좀더 능동적으로 카페 활동을 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관리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빈익빈 부익부인 셈이죠. 꼭 후자에게는 전화나 전화 메시지로 교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현재 회장님이 잘 하리라 믿으나 보다 체계적이고 섬세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아울러 변명 같지만 기혼자들을 이해해 주세요. 사실 가정을 가졌다고 해서 특별히 배려 받을 만한 것은 아니나 안팎으로 신경 쓸 일이 많아 여러모로 미혼자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대신 기혼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겠지요.)


넷째, 회원 모집 광고를 합시다.
근래 우리 산악회만큼 신입 회원 양산이 드문 곳은 거의 전무한 듯합니다. 손에 손잡고 오는 것으로는 재생산 구조가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반증입니다. 30대 이하와 여성들은 거의 씨가 말라가는 추세군요. 카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온라인 회원이 많으면 무엇합니까? 실제 산행 회원으로 결부되지 않으면 허사죠.
그래서 말인데 정산만을 2주전부터 지역 정보지에 광고하는 건 어떨까요? 정산 광고(한남 광고까지 추가)에 카페 주소와 연락처를 명기해 놓으면 카페 회원도 늘 테고, 산행 참가 회원도 서서히 탄력이 붙을 겁니다. 문제는 비용, 제 추측으론 3명만 확보해도 이 정도쯤은 충당하리라 믿습니다.


다섯째, 산악회 문화를 건전하게 쇄신합시다.
우선 과도한 음주문화 개선해야겠습니다. 서울 도착 후 뒤풀이하는 걸 제외하고 산행 중의 음주는 좀 과도한 면이 있습니다. 이건 저부터 반성해야겠군요.
또 놀이문화도 그렇습니다. 고스톱이나 카드 놀이 자제했으면 합니다. 우리끼리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사람이 생긴다면 옳지 못합니다. 안내산악회나 그 여타 수준의 산악회를 수십 번 다녀봤지만 아직 이런 광경은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융통성이 없습니까?
우리가 신입회원들을 수용하기에 벌써 그릇이 너무 낡고 헐었거나, 겉늙은 것이 아닌지 곰곰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보다 젊고 씩씩하게 거듭나는 방법, 이것이 지금의 침체를 푸는 해법인 것 같습니다.



출처 : 겨레사랑산악회(since1992)
글쓴이 : 무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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