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 김경미
아무리 말을 뒤채도 소용없는 일이
삶에는 많은 것이겠지요
늦도록 잘 어울리다가 그만 쓸쓸해져
혼자 도망나옵니다
돌아와 꽃병의 물이 줄어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꽃이 살았으니 당연한데도요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멈춥니다
그냥, 왠지 불교적이 되어갑니다
삶의 보복이 두려워지는 나이일까요
소리 없는 물만 먹는 꽃처럼
그것도 안 먹는 벽 위의 박수근처럼
아득히 가난해지길 기다려봅니다
사는 게 다 힘든 거야
그런 충고의 낡은 나무계단 같은 삐걱거림
아닙니다
내게만, 내게만입니다
그리하여 진실된 삶이며 사랑도 내게만 주어지는 것이리라
아주 이기적으로 좀 밝아지는 것이지요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 / 김경미
나뭇잎 한 바구니나 화장품 같은 게 먹고 싶다
그리고...... 말들은 무엇하려 했던가
유리창처럼 멈춰 서는 자책의 자객들......
한낮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누워 꽃나무들에게 사과한다
지난 저녁부터의 발소리와 입술을,
그 얕은 신분을
외로움에 성실하지 못했던,
미안해 그게 실은 내 본심인가봐
아무래도
책상 밑이나 신발장 속 같은
좀더 깊은 데 들어가 자야겠다
그러한 동안 그대여 나를 버려다오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아름답겠으니....
어떤 날에는 / 김경미
수저같이
아귀같이
푸른 잎들 새로 돋는 봄날에
하루 종일
우두커니
부엌 창 앞에 서서
쏟아지는 물 잠그지도 못한 채 서서
두 손 떨군 채 낮고 작은 창 내다보다
핑 눈물이 도네
노란 봄 스웨터 환한 색깔옷들 아무리 가져다 입어도
낡은 겨울 검정 외투처럼
스스로 무겁고 초라해서
살아와 지금껏
단 한 번도 누군가 잘.있.는.지. 물어봐주지 않은 듯
어떤 날에는
자꾸 눈물이 나서
잘.있.는.지..... 자꾸 눈물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