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나무의 수사학

무아. 2010. 3. 16. 14:56

나무의 수사학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 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 향기를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 거린다는 것

내성耐性이 생긴 이파리들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헌날 신경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는 나무는, 알고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손택수

 

(한국문학 2006 가을호 발표, 미당문학상 후보작)


출처 : 무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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