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수사학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 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 향기를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 거린다는 것
내성耐性이 생긴 이파리들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헌날 신경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는 나무는, 알고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손택수
(한국문학 2006 가을호 발표, 미당문학상 후보작)

출처 : 무아생각
글쓴이 : 무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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