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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 이청준

무아. 2010. 3. 15. 00:03
비록 ‘그 곳’이 없어도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 이 시대 이 세대에게 그 곳이 있나요?
- 고향,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 고... 향? (엥?하는 표정)
- 고향,하면 특별한 감흥이 있어요?
= 글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있다면 모를까, 보통은 별 생각 없지 않나?
- … 아무래도 그렇겠죠?
  2007년의 도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고향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인터뷰하듯 친구들을 향해 질문을 던집니다. 별다른 점을 찾아 낼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게 별다른 점인가요. 친구들 중 절반쯤은 한강변의 ‘번개탄’건물에서 향수(?)를 느끼는, 심지어 이촌향도의 세대가 조부모라니. 故鄕이란 단어가 없는 삶인 것이죠.
  이 시대의 청년 세대에게 고향은 더 이상 무게감있는 장소가 아닌 듯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잊어야만 하는 생채기의 공간이 아니며 신화는 더더욱 아닐 것이죠. 그들과 나는 (어쩌면 여러분들도) ‘고향’을 잘 모르는 것인가요.
  그러니, 이 소설집에 관한 글을 쓰려고 선택한 첫 번째 단어. ‘고향’을 큼직하게 써놓은 채로, 지금 몹시 난감합니다. '고향’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요. 나와 그대에게 ‘고향’이 실존의 문제이기나 한걸까요. 설마 우리에게 고향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가요?
 매달릴 과거가 없다. 그건 다행인가요, 공허일까요? 역사가 내 삶의 궤적을 뒤흔드는 것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때로 그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곤 합니다. 물질문명의 혜택(?) 속에서 화초처럼 자라났다는 것에 때로 미안해야 하고, 때로 무시받기도 하죠. 사족을 달자면, 되돌아갈 고향도 치유해야할 상처의 틈새도 없는 지금의 세대는 아프지 않은가요? 아니, 그렇지 않겠지요. 환부 없이 아픈  ‘머저리’도, 같은 지점에서 눈을 감으며 식은땀을 흘리는 ‘병신’도 살아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장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탑골공원처럼 답답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작은 시골마을에까지 그어댄 상처의 골을 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분들은 왜 그렇게, 일부러 고향과 고국을 잊으며 생애를 살아나가야 했을까요. 내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소설집을 읽는 내내 그런 의문에 시달렸습니다. 이것을 내가 읽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소설집을 덮은 지금도 어렵습니다. 뭉뚱그려 ‘모든 건 알고 보면 똑같은 삶의 문제’라고 소인 찍듯 쾅 넘어가고 싶지만, 끝 맛이 좋지 않아요. 내가 잘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혼란스럽군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과거에 대해 역사에 대해 그리고 고향과 고국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의식을 나누어야 할까요?
 
# 따뜻함
  삶의 모든 틈새를 예리하고 명징하게 파고드는 칼날을 가진 작가. 이청준은 무서운 작가지요.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머리를 두드리며 공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집 역시 그렇게 읽는 사람을 진지하게 만들지만, 그러나 좀더 마음이 놓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색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면서도 깊은 곳에서 술렁이게 하는 그림.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김선두의 그림이죠. (취화선, 임권택, 천년학, 이청준, 대략 그의 인연의 끈을 짐작하게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청준과 김선두는 둘 다 전남 장흥이 고향이랍니다. 과거를 감싸 안는 남도의 사투리와, 깜짝 놀랄 만큼 의외의 색감의 그림에서 새어나오는 남도의 냄새. 어떤 장소에서 살아냈는지가 감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분명히 특유의 향토성은 씻어낼 수 없는 향으로 작품에 묻어나는 건가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김선두 개인전 <모든 길이 노래더라>  왼쪽부터 영화감독 임권택-화가 김선두- 소설가 이청준. 사진 출처:
http://blog.empas.com/sunil7355/19678700
 



 
  색이 유달리 눈에 들어옵니다. 좋아요. 한참 넋을 놓고 바라봅니다. 오래된 이야기처럼 존재감을 발하면서도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잊어야만 하는 장소, 현재를 버티기 위해 잊어버려야만 하는 과거에 피어난 꽃 한 송이. 살며시 끄덕이는 노모의 밤처럼, 잡풀이 가득한 흙길, 붉고 아파도 따뜻한 개화 -.
  그래서 이 소설집은 따뜻한 장소처럼 보입니다. 온기가 조금은 가신 구들장. 침묵이 잠자리처럼 떠있고, 조금은 쓰린데 그래도 괜찮다고 위로할 만합니다. 남도의 저녁 즈음,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노부부의 호들갑스럽지 않으나 확연한 정감이 배어있죠. 고향이 같은 소설가와 화가가 각각 말과 선으로 느릿한 이야기를 주고 받나봅니다. 그림이란 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도 하는 구나 싶습니다. 이 그림들에는 ‘삽화’라는 말은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편의 이야기를 각각 감싸 안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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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윽한 소설집입니다. 조용조용한 말투와 부드러운 그림. 삶의 문제는 깊은 바다처럼 무거우나, 한편으로 바다는 영감의 원천이며 자유의 공간이자 싯푸른 생명의 장이기도 하죠. 그런 바다 한 조각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만나게 하는, 요란하지 않은 모양새의 멋진 ‘책’입니다.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글쓴이 : bol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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