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표현 좀 뭣하지만 내겐 고질병이라 할 만한 게 있다.
하나는 발톱이 파고 드는 고약한 증상(조갑감입증)이고 또 하나는 알레르기 비염이다.
엄지 발톱이 살을 파고 드는 것은 사실 우리 어머니 때문이다.
우리 6남매만 고통받는다면 그래도 약과겠는데 조카들, 심지어 우리 애들까지 대물림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그 망할 놈의 피는 참 쓸데없이 징하다.
김동인의 소설처럼 모두 '발가락이 닮았다'. 이런 것까지 우성일 게 뭐람?
그래서 우리 아이들 발톱은 길다랗게 일자로 잘라줘야 뒷탈이 없다.
명절에 온 식구가 고향집에 모이면 어김없이 그 저주받은 발톱이 술상에 오른다.
급기야 안주가 떨어진 것이고 수십 년간 굴러먹던 만만한 안주가 재등장한다.
어머니를 놀린답시고 여자 하나 집안에 잘못 들여 후손을 줄줄이 망쳤다고 너스레를 떤다.
범인을 색출하여 구속시켜야 하느니, 주리를 틀어야 하느니,
1인당 200만원씩 보상을 받아야 하느니 왁자지껄 농이 오간다.
왜 하필 200만원인고 하니 100만원은 수술비이고 나머지는 정신적 피해보상 차원이란다.
"문디손들! 지랄한다." 어머니의 대꾸는 다소 도발적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그 말 끝에 어김없이 웃음보가 터진다.
그런 연유로 나는 발톱을 일자로 깎아야 하는 걸 잘 알지만 웬일인지 발톱을 싹뚝 잘라내야 직성이 풀린다.
잘라낸다기 보다는 파고, 뽑고, 도리고, 끝내 피를 보는 야만의 수술을 한다.
아프지만 사람을 묘하게 흥분시키는 쾌감,
이 이상한 쾌감을 오히려 즐기고 있는 걸 보면 가끔은 내가 변태 같다.
동병상련을 앓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이 쾌락을 이해할까?
군복무 중일 때 이 발톱 때문에 일명 봉와직염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신참 시절 내무반에 느긋하게 앉아 '수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의무대에서 엄지발톱을 하나 뽑아내야 했지만 기쁨도 잠시 얼마 후 다시 새 발톱이 돋았다.
알레르기 비염도 내겐 발톱 못지않는 고질병이다.
소음인에 흔한 질병인데 환절기마다 사람을 아주 들었다 놓았다 환장하게 한다.
꽃가루 날리는 철은 좀 덜하고 찬기운 도는 환절기 때 더욱 기승을 부리는 걸 보면
내 경우는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라기 보다는 통년성 알레르기 비염에 가까운 것 같다.
심할 때는 정말이지 코를 확 베어버리든가 떼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잠을 조금 차게 잤다 싶으면 다음 날은 귀신같이 재채기와 콧물이 나타난다.
직업상 목을 많이 쓰고 살아야 하는 입장인데 연신 코맹맹이 소리를 하니 영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재채기 소리는 얼마나 격한지 깜짝깜짝 사람 간떨어지게 한다.
내가 알레르기 비염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대학 때인 것 같다.
당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훨씬 증세가 심했다.
종합병원 의사가 등짝에다 침 같은 걸 서른개 남짓 꽂고 피를 뽑더니
알레르기 비염이라고 정의했다.
지금이야 전국민의 1/3 이상이 앓는 흔한 병으로 밝혀졌지만 그때는 병명조차 생소했다.
의사가 금한 음식은 대략 맥주와 돼지고기, 밀가루 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모두 끔찍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기가막혔다.
의사가 처방지시를 잘 따르면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때 일찌감치 완치 따위는 포기해야 한다는 걸 운명적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최소 6개월 이상 식이요법으로 체질개선도 해야 하거니와
무엇보다 이 음식들을 평생 끊고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앓느니 죽는다지만 차라리 앓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여 위 두 가지를 아예 고질병으로 분류하고 내 일생에서 더이상 손대지 않기로 했다.
계란 한 판이 몇 개더냐, 이제 계란 두 판만 벽에 내던지면 인생 쪽나는 건데 그냥 참은 김에 참기로 했다.
바보는 죽어야 낫는다는 말이 있다. 이 고질병도 먼 훗날 내가 죽어야 낫는 것이다.
아 이런 젠장, 그놈의 저주받은 발톱은 영원히 대물림하겠구나.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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