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사랑이든 일이든 사람이 뜨겁다는 것은?
나에게 뜨거운 것은 왜 항상 선이고 진리이고 정의 같은 거였을까.
그것마저 일종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내 입장대로 섣부르게 결론짓고
좀처럼 끓어 넘치지 않으려는 사람에 대하여
그 뜨뜻미지근함을 함부로 평가절하하고 모독하지 않았을까.
‘넌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
도대체 궁합 자체가 안 맞는걸.
원점부터 한 5도 쯤은 어긋난 거야.
머리가 한 바퀴 확 돌면 모를까, 너는 영원히 이해불가야.
연구대상이라고.’
스무고개나 서른 고개를 한창 넘을 때 누군가에게 이렇게 타박한 경험이 있던가, 없던가?
웬만큼 꼭지돌지 않았다면 야박하게 남의 속을 긁었을 리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부류와는 금을 긋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것 같다.
난 이리 뜨거운데 넌 뭐야? 힐난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호불호가 정확하지 않고
어떤 일에도 불을 품지 않는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한데 나도 언제부턴가 시나브로 식고 있다.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역시 나다.
한순간 지독하게 들끓었다가 식는 양은냄비는 되기 싫었는데
건전지 닳은 장난감처럼, 김 빠진 콜라캔처럼, 철 지난 고무 튜브처럼
내 안에서 무언가가 자꾸 맥없이 빠지고 있다.
더는 뜨거워질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덜어낸 것 같아 홀가분하다.
더이상 쓸데없이 피곤하게 살지 않아, 내 안의 내가 말을 한다.
그래 다시는 뜨거운 짓 따윈 하지 않을거야....
이율배반적이며 모순덩어리인 것은 저 탐욕의 세상만이 아니다.
저혼자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는 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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