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서 한국통신 메가TV를 설치해 보고 있는데
한번 입맛을 들이고 나니 그 재미가 쏠쏠하다.
마땅한 일이 없으면 어느샌가 리모콘을 들고 소파에 모로 눕는다.
십중팔구 끝까지 못보고 곯아떨어지기 일쑤지만
이 속임수가 그리 기분나쁘진 않다.
메가TV는 아마 하나TV와 인터넷 TV의 중간단계 쯤일 듯한데
콘텐츠는 아직 하나TV와 별반 차이를 모르겠다.
공중파 방송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다시보기 할 수 있고
영화도 삼백 편은 족히 올라있어 맘먹기 나름이다.
우선 시간 내에 귀가해 딱히 뭘 시청하겠다는 생각을 안해서 좋고
비디오 빌리러 옆 동네까지 원정가지 않아도 된다.
한때 비디오가게 경영을 고려해 본 적이 있었는데 안하길 잘했지 싶다.
배달업이라면 모를까, 대여점은 사양산업으로 접어든 시대가 온 듯하다.
드러누워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되는 세상이니
바야흐로 귀차니스트들이 살기엔 천국이다.
이러다 리모콘 하나로 살 수 있는 세상이 급도래할까 봐 심히 우려되기도 한다.
사실 직업상 밤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TV는 나와 거리가 먼 매체였다.
특히 드라마는 유치해서 언제부턴가 거의 보지 않는다.
(삼각 사각 오각 등 얽히고 설킨 관계설정도 그렇지만 우연을 너무 남발한다.)
오히려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시울을 붉힐 때가 간혹 있다.
스무살 이후로 끝까지 본 드라마가 있다면
소위 국민 드라마라고 하는 모래시계, 허준, 대장금 쯤일 것이다.
요새 시간이 좀 허락되면 영화를 한 편 보고
짜투리 시간에는 시시껄렁한 개그 프로를 본다.
덕분에 혼자 소리내어 히죽대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 아무 데서나 실없이 씨익 웃는 일이 생겨 오해받는 경우가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어 좋다.
나도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싶었던 것일까.
때로는 고단한 짐 훌훌 벗어던지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물흐르듯 그냥저냥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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