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태극종주
"설악태극종주란 최고봉 대청봉(1,708m)을 기준으로 해서 서북능선과 마등령 저항령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길, 그리고 전설 속 멀리 울산에서 와서 금강산에 가려 했다는 울산바위를 거쳐 달마봉과 속초 해맞이공원까지 태극 문양을 따라 S자 라인으로 약 58km를 연결시킨 길이다."
-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저항령-황철봉-울산바위-달마봉-목우재-주봉산-싸리재-청대산-해맞이공원(58km)
◆ 산행일자: 2015.10.9~11(금~일)/무박 3일
◆ 코스: 한계리 모란골-910봉-1257봉-안산-대승령-귀때기청-한계삼거리-끝청-중청-대청봉-소청-희운각-공룡능선 -마등령-마등봉-걸레봉-저항령-황철봉-울산바위-달마봉-목우재-주봉산-싸리재-청대산-해맞이공원
◆ 누구랑: J3클럽(장거리 전문 익스트림 종주산악회) 따라 꽃집총각(김진수)님과~
◆ 날씨: 악천후(하루 종일 비, 짙은 운무, 강추위, 강풍, 눈싸라기...)
▶한 달 전쯤 꽃집총각(김진수)님이 줄을 대고 있는 수원드림팀(익스트림 종주산악회)에서 10.9~11(무박 3일) 설악태극종주(58km)를 계획한다는 얘길 듣고 살짝 미혹된다. 한창 장거리산행에 매력을 느끼는 참이라 단풍 절정기에 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수원드림팀의 신청 인원이 적어 결과적으로 J3클럽을 따라 다녀왔지만 무엇보다 주말에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일정을 비워두는 게 제일 관건이다. 부득이 누굴 죽이거나 하지 않으면 도저히 나오지 않는 황금의 시간이다. 아이들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라 더욱 그렇다. 미리 대비한 덕분인지 다행히 궁색한 변명을 하지 않고서도 얼추 시간이 조정된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J3클럽(제삼클럽, 제삼리 등 별칭으로 불림)은 전국에 지부를 둔 장거리 전문 익스트림 종주산악회다. 자·타칭 전국 최고라고 일컫는 곳이며 내로라 하는 전국 산꾼들의 집합소이자 요람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산꾼들의 선망의 대상이고 동시에 공포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9일은 휴일(한글날)이라 오전부터 일을 앞당겨 하고 20:09 지제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정리에서 합류한 꽃집총각님과 22:00 서울 사당역으로 집결한다.
J3 수도권지부 참가 인원은 총18명. '무한도전팀'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70여명 참가할 거란다. 10일 00:30 한계리 내설악광장휴게소에서 된장찌개 식사를 하고 01:00 넘어 단체 인증샷을 남긴 후 70여명이 바람처럼 휑하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소문난 건각들답게 다들 얼마나 날쌘지... 전쟁시 적진 침투조에 편성되면 참 잘할 듯ㅎㅎ... 한계리 모란골에서 안산 가는 길 8.7km는 태극종주꾼들이 낸 비탐방로인지라 길도 협소하고 그야말로 무지막지하다. 등로가 산객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내내 불친절하고 거친 험로의 연속이다, 도중에 후두둑 눈싸라기 같은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는데 이걸 신호탄으로 하루종일 악천후가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 된 밥에 재 뿌린다더니 고대하고 고대했던 날에 하필 비가 내릴 게 뭐람... 첫끗발이 개끗발 된다는데 조짐이 수상하다. 이 때부터 태극종주 완료시까지 강풍과 강추위에 비가 내리고 간간히 눈싸라기와 우박도 섞여 내린다. 하나 적설량이 없어 설악산 첫눈으로 공식 인정되지는 않은 듯하다. 겨울용 바람막이를 휴대하고 우의를 입어 몸뚱아리는 가렸으나 손가락장갑을 껴서 손가락 끝이 얼어버릴 지경이다. 안산에서 서북능선을 거쳐 대청봉에 이르는 구간엔 운무가 자욱해서 조망이 어렵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운좋게 한번씩 산중미인의 황홀한 자태를 살포시 보여줄 뿐이다. 숨었던 햇볕이 한두 번 산마루를 비추고 여우가 시집을 간다. 그때마다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대청봉은 안 찍어도 상관없는 줄 모르고 중청대피소에 배낭을 내던지고 부랴부랴 대청을 찍고 온다. 그리고 불과 사흘 전 송목 산행에 왔던 공룡능선길을 다시 복습하며 걷는다. 이곳이 왜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경에 꼽히는지 가본 사람은 알리라. 가슴 벅찬 환희와 희열, 기쁨과 성취감 등 만감이 교차하는 곳이다. 감히 나도 산꾼의 대열에 든다면 내가 본 산경의 백미이자 정점인 곳이다. 대한사람들의 로망인 곳, 절세가경이다. 공룡능선이 끝나는 마등령을 지나 대간길을 따라 마등봉으로 직진한다. 이곳부터 저항령까지는 미답지이다. 비는 야속하게 그칠 줄 모르고, 운무는 연신 길을 가로막고, 초강풍(최고 26m/s)이 계속 물귀신처럼 따라붙어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앞서 갔던 J3 멤버들을 하나 둘 만나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추월이 시작된다. 날이 어둡기 전에 황철봉 너덜지역을 통과해야 할 텐데 조난당할까봐 걱정이다. 이곳에서 어두워지면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온몸이 젖은 상태여서 저체온증으로 동사하기 십상이라 정신을 바짝 차린다. 시나브로 정신줄이 혼미해지고 도깨비불이 눈 앞에 번뜩이는 순간 내 생은 덧없이 끝나는 것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무장공비 같은 몰골에 행색이 궁한 건 뒷전이다. 마등령 능선의 걸레봉에서 저항령 내려서는 암봉은 상당한 험로이고 강풍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와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우의를 입은 채 바람을 맞받아서 그런지 쉬 중심을 잃고 휘청댄다. 황철봉 정상을 지나고 그 유명한 너덜지역을 통과하면서 삽시에 주위가 어두워진다. 마등봉에서 만났던 희망새라는 분과 다시 함께 한다. 이 분은 J3 수도권지부에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며 해박한 산행지식에 산행실력도 고수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틀째 야간산행에 접어든다. 걷기만 하다가 또 하루가 가고 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점이다. 체력 고갈과 더불어 먹거리가 바닥을 보이고 있어 시간을 지체할 겨를이 없다. 지난 여름에 송목 번개로 한번 왔던 길인데도 밤에는 사위가 캄캄해 헤드랜턴을 켜도 방향과 거리가 잘 가늠되지 않는다. 자칫 미시령으로 가는 대간길로 접어들 뻔했으나 용케 우측으로 빠지는 길을 택해 울산바위 서봉 옆을 지나 계조암까지 내려온다. 계조암 목탁소리를 위안 삼아 마지막 남은 주먹밥을 먹고 식수를 보충한다. 일단 위험구간은 거의 지나고 안심해도 될 구간까지 온 것 같다. 계조암 지나 국공감시초소를 거쳐 달마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알바가 많은 구간이라는데 단번에 잘 찾아든다. 달마봉은 지난번처럼 정상으로 올라 바위 릿지구간을 통과하지 않고 2~3부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한다. 태극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야간에 달마봉 정상 릿지구간을 통과하는 것이 위험해 이 길을 주로 택한다고 한다. 한번 능선을 잘못 타 알바를 하였지만 희망새님의 리딩으로 목우재까지 무사통과한다. 그러나 트랭글을 보니 여기서부터 주봉산-싸리재-청대산-해맞이공원까지 아직 15km 정도 남아있다. 가도가도 산 너머 산이다. 그리운 모든 것은 다 산 너머에 있다더니 정말 그렇다. 높지 않고 위험구간이 없는 육산이라 다행이지만 지금부터 최대의 적은 졸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다. 졸려서 앞을 가누지 못할 정도다. 헛발을 딛거나 여러번 뒤뚱거려 바닥에 코를 박을 뻔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청대산 구간에선 배낭을 진 채 땅바닥에 누워 10분 정도 잠을 청한다. 주봉산-청대산부터 해맞이공원이 있는 동해안까지 정말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차라리 힘들지라도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바위산이면 좋으련만... 볼거리도 전무하고 고도 편차가 적어 재미는 더더욱 없다. 태극종주의 하이라이트는 목우재에서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지만 해맞이공원까지 태극 형상의 종주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구색을 맞춘 느낌이다. 백두대간과 차별화하기 위한 산꾼들의 전략이겠지만 어찌 보면 설악태극종주의 사족 같기도 하다. 거창하게 시작했던 설악태극종주가 왠지 용두사미가 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해맞이공원 옆 버스가 있는 지점까지 걸어 종주 완료. 다리야, 네가 정말 고생 많았다. J3가 인증한 소요시간은 25시간 3분(휴식 포함). 트랭글을 제 시간에 끄지 못해 트랭글엔 25시간 20분으로 찍혔다. 나중에 들은 소식은 악천후로 완주를 한 사람은 겨우 2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꽃집총각님과 시내 찜질방으로 가서 목욕하고 지친 몸을 누인다. 11일 10:00 버스에 올라 사당을 거쳐 다시 전철 타고 평택에 도착한다. 설악태극종주는 마지막 완주자가 복귀할 때(보통 15:00)까지 기다리는 것이 관례이나 이번엔 중탈자가 많아 예상 외로 산행을 빨리 종료하고 출발한다. 13:40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귀가하여 1시간여 눈을 붙이고 다시 출근하여 급한 일을 마무리한다. 아, 설악태극종주... 거룩하고 위대한 이름이여. 정말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생존게임 같은 산행이었다. J3에서조차 중탈자가 2/3가 넘는다고 하니 난이도는 언급해서 무엇하리. 지난 강북 5산(불수사도북) 종주의 1.5배~2배 정도로 힘든 산행이다. 다시 설악태극종주를 할 날이 올까 생각하니 문득 소름이 돋고 몸서리가 쳐진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내가 걸었던 길이 꿈에 나올까봐 두렵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산이 그리울 것이다. 나는 지금 불치병을 앓고 있다.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을 이겨내려는 나의 유일한 출구이고 희미한 빛이다. 담엔 꼭 사족은 떼고 달마봉 목우재까지만 걸으며 설악의 황홀경을 맘껏 누려보리라. 시간은 무정하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법,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겠다. 악전고투를 하며 동행한 희망새님, 꽃집총각님께 감사드린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 '한계령을 위한 연가' 부분(시인 문정희)
▲ J3 인증 소요시간(25시간 03분)
도착 후 트랭글 끄는 걸 잊은 채 17분 초과되었다. 또한 배터리를 아껴야 해서 트랭글 이어쓰기를 하려고 중간중간 휴대폰 전원을 꺼두었는데 트랭글에 에러가 생긴 것 같다. 거리가 3km 정도 끊긴 곳이 있고(같이 하산한 분의 트랭글 총거리는 59km 정도), 실제 휴식을 채 1시간도 하지 않았으나 휴식시간이 07:13으로 잡힌 것으로 보아 트랭글 꺼둔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인식한 것 같다.
▲안산 정상 10일 01:00 한계리 모산골에서 출발하여 대략 4시간 후 안산 도착(안산까지 8.7km 지점) 태극종주꾼들이 낸 듯한 이 길은 처음 가보는 비탐방로이고 등로는 원시적이며 한마디로 무지막지하다. 안산 도착하기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대승령 도착 이곳에서 하산하면 우리나라 3대 폭포인 대승폭포 가는 길이겠지만 그 길을 버리고 서북능선을 탄다.
▲귀때기청봉 비가 내려 시종 조망이 되지 않는데 일순간 운무가 걷히며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비에 귀싸대기 맞으며 고생했다고 귀때기청봉이 보상해 주는 듯하다.
▲귀때기청봉 정상 어마무시한 너덜길이 이어진다. 귀때기청이 철쭉으로 옷을 갈아 입을 때 한번 와야겠다.
▲ 대청봉 사흘 전에도 송목 공룡능선 갈 때 다녀왔다. 태극종주에 대청봉은 꼭 안 들러도 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정상 인증샷을 기다리는 줄 때문에 표지석만 찍었고 우연히 모델이 되신 분은 전혀 모르는 분이다. 귀때기청봉부터 이곳까지는 내설악이 조망되는 곳이지만 운무에 가려 조망이 꽝이다.
▲중청대피소
▲소청에서 희운각으로 하산하며 본 공룡능선 비가 계속 오지만 모세의 기적처럼 한번씩 조망을 열어주기도 한다.
▲ 드디어 공룡능선으로 접어든다. 운무가 장막을 걷을 때마다 찰칵 해둔다.
▲공룡능선의 백미 1275봉
▲공룡능선에 본 내설악 쪽과 울산바위
▲마등봉 정상 마등령에서 500미터 정도 직진하여 대간길을 따라가면 나온다. 설악산 전구간에서 유일하게 마등봉-저항령 구간이 미답지였는데 드디어 소원을 풀었다.
▲마등령 쪽에서 본 저항령과 황철봉 방향 아래 안부가 저항령이다.
▲마등령 능선에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 험로를 너머 반대 사면이 저항령인데 저항령으로 넘어서는 너덜지역의 강풍이 상상을 초월한다. 몸이 휘청거리고 옆으로 휙 날아갈 정도다. 나는 어쩌다 한번 오는 산객일 뿐이지만 수백년 풍파를 겪어온 나무는 얼마나 고생일까 생각하니 대견스럽다.
▲마등령 능선에서 바라본 저항령과 황철봉 아래 안부가 저항령이다. 지난 여름에 송목 번개로 목우재-달마봉-울산바위 서봉-황철봉-저항령까지 온 길이라 익숙하다. 지난번엔 저항령에서 소공원으로 하산하다가 고생 엄청하였다. 오랜 휴식년제에 묶여 길이 없어졌고, 원시림지역이라 뱀조차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하산하는 데만 꼬박 4시간 걸린다.
▲저항령 안부
▲황철봉 오르다 본 마등령 방향
▲황철봉 너덜지역 황철봉 너덜지역은 귀때기청봉 너덜지역보다 더 넓으며 전국 최대로 꼽힌다. 몇 군데 대형 너덜지역이 산재해 있으며 하산길은 그중 3군데 너덜지역을 통과한다. 너널지역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최소 타박상 아니면 골절이라 조심한다. 황철봉에서 줄곧 직진하면 미시령으로 가는 대간길이지만 다시 오른쪽으로 빠져 울산바위로 향한다. 이후부터 울산바위-달마봉-목우재-주봉산-싸리재-청대산-해맞이공원까지 다시 야간산행이다. 하여 기록으로 남겨둔 사진이 없다.
▲11일 귀가길에 미시령을 지나다 버스 안에서 본 울산바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청명한 날씨를 보이고 있다. 울산바위 8부능선까지 단풍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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