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

[스크랩] [산이야기]하늘로 솟은 힘찬기세 백두대간 줄기 답구나

무아. 2010. 3. 17. 10:36

[산이야기]하늘로 솟은 힘찬기세 백두대간 줄기 답구나
남덕유산(南德裕山, 1507.4m, 경남 거창군북상면)
[대전=중도일보] 허공으로 솟아오른 신비의 성(城)처럼 철 계단은 산을 장식했고, 도처(到處)에 널려진 ‘스릴’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백두대간 줄기의 힘찬 몸부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서운 추위에 눈보라까지 몰아쳐 혹한의 진면목을 드러냈고, 그 여파는 망막(網膜)과 손끝까지 공격하여 한쪽의 시야를 흐렸거나 인지(人指)에 동상도 주었다. 그것은 산행에서 얻어진 소중한 훈장이었고, 기축년의 시작이 안겨준 아름다운 추억거리이었다. 한편 극한에서도 은빛의 황홀함에 넋을 놓았고, 눈꽃의 멋진 장관에 감탄사의 연발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준 자연의 환희(幻戱)이기도 했다.

지난 1월 ‘한우리신협 산악회’와 오전 8시 청솔아파트 상가 앞에서 정시에 출발해 목적지 영각사(靈覺寺, 경남 함양군 서상면)쪽으로 향했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많은 눈으로 통행이 제한돼 ‘새터 신기마을’에서 하차(10:03)할 수밖에 없었다.

눈은 이미 제법 내렸고 산행 나온 버스들이 뒤엉켜 후진하고 있었으며, 우리 일행은 눈보라 속에서 다른 산행 팀과 함께 군 시절(軍 時節)의 느낌으로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걸었다.

‘덕유교유원’을 지나자 ‘남덕유산 3.8km, 영각공원지킴터 0.4km’ 가 있었고, 산행안내 그림을 살핀 다음 길 따라 걸었다. 새해의 서설(瑞雪)을 예상한 때문인가 산 꾼들의 표정은 밝았고, 전 세계가 경제의 몸살을 앓아도 전혀 그런 빛은 보이지 않았다. 산우(山友)들은 길을 메웠고, 우리 일행 또한 그들 틈에 끼어 문짝을 달아 출입을 통제하던 영각통제소를 지나고 있었다.

눈이 그치고 있었고, ‘남덕유산 2.4km, 영각통제소 1.0km’의 비탈길을 걸을 때 햇살이 났으며, 길바닥은 주로 돌인데다가 높이를 더 할수록 바닥은 얼어 아이젠을 착용하게 했다.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돌길은 더욱 가팔랐고, 쉼터이듯 약간의 빈터에서 쉬어가기도 했다. 돌무덤은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산 꾼들이 쉬는 동안 하나씩 쌓아둔 정표(情表)가 아니었을까 추측되었다. 밧줄을 달아둔 돌길이더니 계단(177개)으로 바뀌면서 가팔랐고, 나는 두 번에 나누어 겨우 올라갔다.

영각재였다. ‘남덕유산 0.8km, 영각통제소 2.6km(해발 1400m)’의 안내팻말을 보면서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5,6년 전이던가? 식구와 동행했을 때도 지금처럼 많은 눈이 내렸던 한 겨울이었고, 사람들 등살에 어찌 다녀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말이다. 매서운 바람은 칼끝이었다. 설원(雪原)의 눈바람까지 합세하여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으나‘재킷’덕을 단단히 보았고, 볼펜의 잉크가 얼어 준비해 간 제도용 연필이 유일한 메모 도구였다. 문제는 메모와 사진 때문에 가죽 장갑의 우측 엄지와 인지를 잘라버린 후유증이었다. 그 사이를 밀치고 들어오던 매서운 바람이.....

‘영각재’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던 가파른 바위 능선을 타야 했다. 정상과의 높이 차이는 100m에 불과했으나 소요시간은 무려 40분정도인지라 매복(埋伏)된 바위 길과 철 계단의 험준한 오르내림은 분명 마(魔)의 코스라 해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암벽에 철 계단이더니 두 번 꺾이어 134개나 되었고, 30여분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반복하더니 계곡 옆으로 바위의 비탈길이 나타났으며, 깊은 계곡에 걸쳐둔 다리는 나락(奈落)의 상징처럼 보여 오금이 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바위틈에 얹어둔 철 계단에 남녀 한 쌍은 그토록 추운 날에 난간을 잡고 씩씩하게 올라 그 용기의 원동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 끝에서 펼쳐지던 눈 그림은 한마디로 감탄 그것이었고, 푸른 하늘에 암봉으로 연이어 솟구치던 장관에서 신비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정상으로 오르던 바위 자락엔 산 꾼의 모습들이 줄을 이었지만, 철 계단을 타고 밑으로 한참 내려선 다음의 일이라 처음엔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개미떼처럼 쉴 사이 없이 오르내리던 뜨거운 모습에 남은 힘을 다하여 발진(發進)했고, 기진맥진으로 힘겹게 오르면서 한파와 싸우다보니 그 많던 계단의 개수도 헤아리지 못했다. 오로지 기억에 남은 것들은 가파른 계단이었고, 간간이 만들어둔 전망의 쉼터에서 바라본 황홀한 설경 그것뿐이었다.

남덕유산 정상(1507m)이었다. 산 꾼들이 너무 많아 사진 한번 찍기 위해 줄을 서야했고, 어떤 젊은이에게 간신히 부탁하여 한 컷을 얻고 바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살을 저미던 칼바람은 지체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사진과 메모 때문에 노출시켰던 두 개 손가락은 점차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길을 물어 맞은편으로 내려서니 ‘향적봉(대피소) 15km, 영각공원지킴터 3.4km’의 팻말이 있었고, 바로 곁엔 ‘세모진 나무판’에 ‘정상 남덕유 0.3km, 영각사 3.4km, 서봉 1.2km, 월성재 1.1km’를 가리키는 흐릿한 안내판이 꽂혀있었으며, 중요한 것은 ‘월성재’ 방향이었다. 눈바람은 얼굴이 따갑도록 스치고 있었다.

‘남덕유 0.1km, 삿갓재(대피소) 4.2km’(2:13)의 팻말을 보고 우측으로 내려섰다. 그곳이 바로 ‘월성재’였고, 직진하면 ‘삿갓봉’으로 가는 길이니 특히 주의하라고 일러주던 회장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계곡에서 치솟던 바람은 무섭게 몰아쳐 왼쪽 볼을 강타했고, 나중에 알았던 일이었지만 귓밥을 얼게 만들어버렸다. 철들어 처음 경험하는 해괴한 일이었고, 안경에 성에가 끼는 줄 알았더니 그 또한 혹한에 의한 망막(網膜)과 수정체(水晶體)의 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이었다. 그때부터 발걸음은 어둔해졌고, 내리막 가파른 길에선 점차 자신을 잃어가기만 했다. 우측 눈과 양쪽 스틱이 유일한 계기판(計器板)이었다.

‘황점마을 3.8km’를 알려주는‘월성재’ 안내판이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어 일행들에게 이미 피해를 주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하산하겠다는 일념으로 점심도 걸렀다. 지나가던 산 꾼들의 이야기 속에 사고가 있어 헬기가 떴다는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고, 갑자기 허기가 들어 뜨거운 물을 꺼내어 빈속을 채웠다. 눈알을 굴리기 쉽다는 말이 얼핏 생각나면서 ‘스틱’의 길이를 다시 조정하기도 했다. 산 꾼들이 날세게 지나가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월성재의 큰 안내판 그림이 나타났다. 산 꾼들이 무리지어 쉬거나 간식을 먹었지만 나는 ‘황점마을 3.8km’의 팻말을 보고 우측의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가파른 계단이었지만 눈에 묻혀 평범한 길이었고, 잠시 후 91개의 계단은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쉬어가게 했다. 바닥에 내려서니 낯모르는 산 꾼들이 골짜기 한쪽 구석에서 모여앉아 멋진 산행의 뒷이야기를 나누었고, 한 친구는 약주한잔을 권했지만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눈이 흐려지고
손끝의 감각이 망가지는 경우에도
산에 대한 뜨거운 열정
어쩌면 세월을 잊어
봄에 대한 불같은 기다림 때문이지도 모른다.
나목(裸木)의 줄기를 타고
강인한 생명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산길>
1. 황점매표소-삿갓골-삿갓골재-삿갓봉-월성재-남덕유산-영각재-영각매표소(7시간30분)
2. 황점매표소-바랑골-월성재-남덕유산-영각재-영각매표소(4시간30분)
3. 황점매표소-바랑골-영각재-남덕유산-월성재-바랑골-황점매표소
4. 영각매표소-영각재-남덕유산-월성재 또는 삿갓골재-바랑골-황점매표소
*4시간30분 또는 7시간30분 소요

<교통>
1. 거창 시외버스터미널
: 서흥여객(055-944-3720) - 황점행(1일4회)
영각사행(1일6회)
2. 장수 양악리 장계터미널(063-352-1514)
: 무주행 버스-원촌에서 하차(30-30분 간격으로 운행)

출처 : 천안버들세상
글쓴이 : 능수버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