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새는 날아가고

무아. 2010. 3. 16. 15:02

새는 날아가고

 

 

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 밖은 고요해

그래도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인 사과를 베어 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 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담겼다 비워지지

심장을 잃어버린 것들의 박동을

너는 들어본 적 있니?

둘레로 퍼지는 침묵의 빛,

사과를 잃어버리고도

접시가 아직 깨지지 않은 것처럼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식탁과 접시는 말없이 둥글고

창밖은 고요해

괄호처럼 입을 벌리는 빈 접시,

새는 날아가고

나는 다른 심장들을 훔치고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지

 

-나희덕

출처 : 무아생각
글쓴이 : 무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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