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 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우포에서
후두둑 빗방울이 늪을 지나면
풀들이 화들짝 깨어나 새끼를 치기 시작한다
녹처럼 번져가는 풀은
진흙뻘을 기어가는 푸른 등처럼 보인다
어미 몸을 먹고 나온 우렁이 새끼들도 기어간다
물과 함께 흔들리고 있는 풀들
그 사이로 빈 우렁이 껍데기들 떠다닌다
기어가는, 그러나 묶여 있는
고여 있는, 그러나 흔들리는
비가 아니었다면
늪은 무엇으로 수만 년을 견뎠을까
무엇으로 흔들림의 징표를 내보였을까
후두둑,
후두둑,
후둑후둑,
빗방울이 늪 위에 그려넣는 무늬들
오래 고여 있던 늪도
오늘은 잠시 몸이 들려 어디론가 흘러갈 것 같다
[`99 제44회 현대문학상수상시집]수상후보작 중에서
출처 : 시사랑
글쓴이 : 플로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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