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생일파티 / 문정희

무아. 2010. 3. 16. 14:35

[작은갤러리] 사유적 공간 / 이석주

[詩가 있는 아침] 
문정희(1947~), '생일 파티'
싱싱한 고래 한 마리 내 허리에 살았네
그때 스무 살 나는 푸른 고래였지
서른 살 나는 첼로였다네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잘 길든 사내의 등어리를 긁듯이
그렇게 나를 긁으면 안개라고 할까
매캐한 담배 냄새 같은 첼로였다네
마흔 살엔 장송곡을 틀었을 거야 
검은 드레스에 검은 장미도 꽂았을거야
서양 여자들처럼 언덕을 넘어갔지
이유는 모르겠어
장하고 조금 목이 메었어
쉰 살이 되면 나는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어
오히려 가볍겠지
사랑에 못박히는 것조차
바람결에 맡기고
모든 것이 있는데 무엇인가 반은 없는
쉰 살의 생일 파티는 어떻게 할까
기도는 공짜지만 제일 큰 이익을 가져온다 하니
청승맞게 꿇어앉아 기도나 할까

나는 정말 고래였을까. 
잘 익은 첼로였을까. 
오늘 내가 대륙이라면 그곳엔 몇 송이 장미가 피어있을까. 
오늘 내가 싱싱한 바다라면 심연에는 왈츠, 소나타, 그런 곡들도 싱싱하게 흐르고 있을까. 
어젯밤 나의 생은 파티였을까. 
오늘밤 내가 탱고라면 나는, 나의 생을 연인처럼 끌어안고 뜨겁게 속삭일 수 있을까.
박상순<시인>  

출처 : 중앙일보

 
출처 : 민애청 그때 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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