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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국민가요 <모닥불>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 박인희

무아. 2010. 3. 15. 13:37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 박건호를 말한다                                            박 인 희

 

지금은 사라져버린 동아 방송의 '3시 다이얼'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1970년 초로 기억된다. 1972년,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방송이 끝난 후 현관 앞을 마악 나서는데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복도의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추운 겨울 날, 그는 외투도 입지 않고 나를 찾아 왔다. 첫 인상이 몹시 추워 보였다.

"안녕하세요. 박인희 씨."

첫만남이지만 그 목소리는 서먹서먹하지 않고 구김살이 없었다.

"제 친구와 저는 박인희 씨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제가 글을 쓰고 제 친구가 작곡을 했어요. 이 노래들은 박인희 씨를 위해서 만든 작품인데요. 저희들의 꿈이, 박인희 씨의 목소리로 이 노래들을 들어 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곁에 있는 친구를 나에게 소개했다. 역시 모르는 청년이었다.

 

그런 일은 나에게 가끔 있는 일이었다. 편지 속에 아름다운 시를 넣어 보내 주는 시인, 작곡을 하다 보니 이 노래를 당신이 부르면 어울릴 것 같아 보낸다는 작곡가, 또 이름 모를 어느 대학생이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작품들…… 나에게 시를 보내주거나 작곡을 해서 보내주는 사람들 중엔 유명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신분이나 이름 모를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바람은 한결같이 순수했다. 그냥 한 번 당신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니 아무 때나 부르고 싶을 때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마음에 들어 취입을 하게 되면 잊지 말고 레코드나 한 장 꼭 보내 달라는 부탁이 있을 뿐 그지없이 소박했다.

 

심지어는 어느 초등학교 학생이 연필로 그린 악보와 함께 이런 글을 보내 준 적이 있었다.

"인희 누나! 저는 노래를 참 좋아해요. 우리 엄마와 형이 기타를 치며 누나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여기 보내는 이 노래도 누나가 꼭 한 번만 불러주세요. 피아노를 치다가 제가 만든 노래예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나 아름답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은 소박함, 순수함이 깃들어 있다. 아름다움은 마음을 열고 살아갈 때 느낄 수 있다.

그 해 겨울 외투도 없이 찾아 온 그 청년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박인희 씨 노래를 듣고 그 때 저의 꿈이...... 박인희 씨 노래에 제가 한 번 시를 써 보았으면 하는 거였어요."

"고맙습니다. 예고도 없이 오셔서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시느라고 몹시 추우셨을 텐데...... 따끈한 차나 한 잔 마시면서 얘길 하지요."

방송국 앞에 있는 조그만 찻집에서 그 두 청년은 두 사람의 작품을 담은 악보들을 내게 주었다. 뜨거운 커피 내음을 마음으로 마시며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해 보니 기성 작사가에게 느낄 수 없는 진솔함이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진솔.

 

"이 노래들은 처음부터 박인희 씨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밤을 새워가며 둘이 열심히 만들었어요. 그러나 마음에 드실지......"

"시도 곡도 마음에 들어요. 그러나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시는지요?"

"저희들은 레코드 취입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레코드 회사도 물색해서 저희들끼리 정해 좋은 곳이 있고, 또 이 노래만큼은 제가 직접 제작하고 싶어서 아버님께 말씀드려 사업에 대한 모든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랍니다. 문제는 박인희 씨의 승낙뿐입니다."

작곡을 했다는 청년이 말했다.

 

"그렇다면 위험 부담이 크실 텐데요. 저는 원래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TV에도 제가 나가고 싶지 않으면 절대로 나가지 않아요. 레코드 취입을 하려면 취입한 후 지방 공연이다, 쇼다, 밤무대 출연이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 본 일도 없고 앞으로도 원하지 않아요. 다만 노래 자체가 좋아서 그냥 잠시 불렀을 뿐, 그리고 지금은 그 노래도 다 그만두고 방송에만 전념하고 있어요. 저에게 기대를 거셨다가 공연히 실망하지 마시고 오늘은 추운데 일부러 이렇게 찾아 주셨으니 그냥 차나 한 잔 마시고 다른 얘기나 나누지요."

 

"아니예요. 박인희 씨가 그동안 어떻게 활동해 오셨나 하는 것은 저희들도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레코드 회사에서도 만약에 이 노래들을 박인희 씨가 직접 부르신다고 승낙하신다면 서로 제작하겠다는 회사도 여럿이 있어요. 솔직히 말씀 드려서 박인희 씨가 승낙만 해 주신다면 취입 후의 문제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신중하게 생각한 후 제가 직접 제작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무어라 확답을 드릴 수가 없군요. 악보를 집에 가서 차근차근 좀 더 살펴보고 취입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어요. 우선은 무엇보다 작품이 좋아야 하니까요. 또 아무리 작품이 좋다고 해도 제가 소화해 낼 수 있을 지 그것도 미지수고......"

 

차를 마시며 그들이 나에게 준 시집 한 권을 뒤적였다. 겉표지가 빨간 시집이었던가.

"고등학교 때는 참 열심히 시를 썼지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박인희 씨가 "뚜와 에 무와"로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고 꼭 한 번 뵙고 싶었지요."

 

널리 알려진 이름에 비해 듀엣으로 노래했던 '뚜와 에 무와(Toi et Moi)'의 시절은 활동 기간이 1년 정도였다. 젊은 날 내게 찾아온 열병으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내출혈을 지혈시키기 위해 거머쥔 것이 기타 한 대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던 어느 이발사의 부르짖음 대신, 기타라는 나무 등걸에 소리 죽여 울던 나의 속울음. '약속', '스카브로우의 추억', '그리운 사람끼리', '세월이 가면'...... 불과 몇 달 동안 넉 장의 독집 레코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노래가 전부였던 삶. 노래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에 타성이 기어 온다.

 

어느덧 내 이름 석자 뒤에는 괄호가 따라다녔다. 조그만 내 이름 박인희일 때는 자유로운 삶이, 괄호 속에 '가수'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자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을 강요받게 되었다. 다른 사람 눈에 비추어지는 나, 추측이라는 도마 위에서 난자당하는 나, 그러한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인기인, 유명인이라는 이름 뒤에는 내면의 붕괴가 컸다.

 

- 내가 언제 빵 한 조각을 위해 노래했던가.

- 아니다.

- 스타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는가.

- 아니다.

- 그럼, 왜 노래를 불렀나.

노래가 좋아서, 그냥 부르고 싶어서, 그냥. 부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처음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나 갈채보다 단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영원히 살아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다.

 

- 지금도 그런가.

그 생각은 날이 갈수록 더해 이 다음에, 어느 먼 훗날에 누군가 자신이 삶을 뒤돌아보면 문득 쓸쓸해질 때, 그 어둑어둑한 삶의 저녁 길을 걸어가며 어쩐지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가슴에 슬며시 떠오르는 노래……

'그래, 어쩌면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의 마음도 지금의 나와 같았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생각이 드는 노래, 그래서 조금쯤 쓸쓸함을 가질 수 있는 노래, 한 곡이라도 좋으니 나는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을 뿐이야.

 

그 무렵 나의 내면의 소리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는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소고 싶지 않은 자리는 절대로 서지 않았다. 은퇴라는 말은 함부로 떠올리는 말이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피 흘리는 진통을 겪되,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 바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침묵이 무능으로 안주되지 않기 위해선 내면을 후비는 시간의 끌과 정(釘)은 되도록 날카로워야 한다.

 

그 무렵 나를 아껴주는 프로듀스들과 레코드 회사에선 적극적으로 나에게 솔로 활동을 권유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작곡가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나는 다기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지 못 했다. 그 침묵기에 두 청년이 찾아 온 것이다. 차를 마시며 무심코 넘겨보던 시집 한 권, 몇 장을 넘기다가 눈길이 머문 시구가 있었다.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눈으로 시를 읽었으나 그 순간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이미 예전부터 내가 잘 알고 있는 노래처럼. 원래 이 시는 나의 노래가 된 <모닥불>의 시구보다 조금 더 긴 시였다. 원문은 다 기억할 수 없으나 그 때 그 자리에서 마음속의 멜로디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다시 그 시들을 읽고 있는데 내 마음 속에선 바로 조금 전 처음으로 시를 읽었을 때처럼 똑같은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다시 읽어 봐도 똑같은 멜로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막힘없이 샘솟는 멜로디……

조금 전 이 멜로디가 어떠했으랴 하는 착각 같은 것은 전혀 들지 않았으므로, 멜로디끼리 서로 부딪힘 없이, 생각끼리 서로 부딪힘 없이, 하나의 노래가 솟아 오른 것이다.

 

두 청년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며칠을 기다렸다. 하나의 멜로디가 포도주처럼 잘 익기를. 만약에 며칠 동안 잊지 않고 그 멜로디가 그대로 머물러 준다면, 나는 그 노래를 부르리라. 그리고 소망처럼 그 멜로디는 가슴에 남아 나의 노래 <모닥불>이 되었다.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의 마음속에서 흐르던 멜로디 그대로, 덧붙일 것도, 떼어낼 것도 없이 오선지에 악보를 그렸다. 

  

  충남 보령에 세워진 박건호의 '모닥불' 육필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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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카페테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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