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80607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시대의 보헤미안 김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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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수는 국내 유일의 아트 포크 록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는 인기가수도 아니고 일반대중이 기억할만한 변변한 히트곡도 없다. 분명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대중음악계에서 비주류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그는 상품 같은 노래가 판치는 기존의 대중음악 구조에서 한참을 빗겨나 있는 다른 차원의 가수다. 그의 노래는 자연에 대한 찬미와 인간의 이상향을 느릿느릿 관조하기에 그다지 흥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적이고 아름답게 조탁된 그의 노랫말과 신비롭게 편곡된 서정적인 멜로디는 마술을 발휘한다. 독특한 김두수표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해독제조차 없는 중독성을 품고 있다. 일단 그의 음악에 중독된 청자는 환상특급 열차에 동승할 여행자가 될 수밖에 없다.
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석 장의 비범한 창작 앨범을 발표했다. 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한동안 '은둔의 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사경을 넘나들게 한 경추결핵과 싸웠던 11년의 공백 후 2002년 4집 [자유혼]으로 돌아왔다. "대중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극찬을 이끌어낸 4집은 그해 네티즌들에 의해 '올 해의 국내 대중음악 최고 음반'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으로 선정되었다. 오랜 은둔의 빗장을 열어 제치고 그가 들려준 노래들은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음악적 실험과 아름다운 서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 탐미적 멜로디였다. 그가 5년 만에 신보 [열흘나비]를 발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미디어를 통해서는 만나기 힘든 뮤지션으로 유명한 그를 서울 인사동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 노래에 대한 평가는 청자들의 몫이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위로와 평화를 주는 노래를 하고 싶다."
최규성 :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당신의 4집 [자유혼]이 당당히 선정된 소감을 듣고 싶다.
김두수 : 우선 큰 영광이다. 사실 4집 앨범이 많이 팔린 것도 아니고 내가 활발한 공연 활동으로 대중 앞에 자주 나서는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에 선정소식은 정말 의외였다. 오랜 공백 끝에 데뷔음반 개념으로 발표했지만 부족함이 많은 음반인데 좋은 경력을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음반마다 순위가 있던데 솔직히 음악에 순위는 매기는 자체는 찬성하지 않지만 침체된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을 모으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최규성 : 4집 [자유혼] 때 보다 6년이나 빠른 사이클로 발표한 5집 축하한다. 지난 5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김두수 : 그 동안 여기저기 여행도 하고 그냥 일상의 삶을 살았다. 경기도 양평에 조그만 집 한 채를 짓느라 좀 바쁘긴 했다. 보통 1~2년 만에 내는 앨범 사이클은 비즈니스적인 기간일 뿐이다. 내가 좀 느린 사람이라 새 앨범발표에 5년의 간격은 적당한 기간이라 생각한다. 신보 발표는 그저 나도 모르게 한두 곡씩 모여진 곡들이 많아지면 한 번씩 묶어보는 개념으로 기간에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최규성 : 2006년에 [International Sad Hits]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미국에서 발매되었고 이번 5집도 일본 P.S.F 레코드에서 제작된 수입음반이다. 외국에서 당신 음악을 인정하는 것 같아 반갑긴 한데 왠지 국내에선 제작제의가 없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신보를 일본에서 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두수 : 내가 상업적으로 음반이 많이 팔리는 가수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신보 제작 제의를 받았었다. 그땐 곡을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음반 한 장을 만들 작품이 쌓여져야만 작업을 계획한다. 5집을 일본에서 제작한 것은 곡이 준비되었을 때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메이저는 아니지만 일본의 언더그라운드에서 30년 전통을 쌓은 레이블이다. 일본말이 아닌 한국말로 취입해 일본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 내 음악을 월드뮤직으로 소개하려는 제안이 좋았다. 한국말로 노래한 내 노래를 외국에 소개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류열풍이라 해서 주류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은 외국으로 많이 나가지만 나와 같은 비주류 쪽 뮤지션들에겐 흔치않은 일이다.
최규성 : 당신은 녹음하는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하는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번 4집 자유혼 녹음도 정식 녹음 스튜디오가 아닌 강원도 산골짜기 자연 속에서 녹음을 해 흥미로웠는데 이번엔 어떻게 녹음을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김두수 : 비밀리에 녹음? 아니다. 내 녹음 모습을 궁금해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웃음). [자유혼]의 경우 자세히 들어보면 새소리, 벌레소리 심지어 강아지 소리까지 들린다. 방음을 하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 녹음했기 때문인데 내 보컬과 연주를 뺀 나머지 악기 세션은 모두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 나는 반주를 먼저 하고 노래를 나중에 하는 일반적인 스타일과 역순으로 녹음하는 스타일이다. 작은 홈 레코딩 스튜디오가 있어 사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녹음하는 스타일이다. 사실 동시녹음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데 아직은 여건상 힘들고... 언젠가는 동시녹음으로 앨범을 구성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이번 앨범은 지난여름 양평 집에서 녹음작업을 했다.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너무 더워서 녹음작업이 참 힘들었다. 소음 때문에 에어콘을 가동할 수도 없었으니까. 이번 5집 수록곡들은 한 곡만 예전에 발표한 곡을 리바이벌했고 나머지 곡들은 모두 2년 안쪽에 작곡한 신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규성 : 이번 5집도 CD는 물론이고 1000장 한정으로 LP까지 발매되었다. 신보를 발표하는 현재 진행형의 뮤지션 중 모든 음반이 아날로그 LP로 발매한 경우는 당신이 유일할 것 같다. MP3같은 디지털 음원이 판치는 세상에 제작비가 많이 드는 LP제작은 쉽지 않은 작업인데 아날로그 사운드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가?
김두수 : 솔직히 한 번도 MP3음원으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LP시대에 음악을 시작한 사람이라 아날로그 사운드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그렇다고 LP제작에 집착하거나 고집하는 건 아니다. 녹음과정에서 자연스럽게 LP제작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LP제작이 불가능해 일본에서 제작한 수입LP가 되다 보니 청자들에게 가격문제로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이번에 작은 불협화음이 있어 앞으로는 LP 제작여부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생각을 해봐야겠다.
최규성 :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180g 중량반 LP로 제작한 이유는?
김두수 : LP는 중량이 작으면 내구성이 떨어져 잘 휜다고 들었다. 180g 중량반으로 제작을 하면 경비 부담은 늘지만 내구성도 뛰어나고 사운드도 일반LP에 비해 향상된다고 해 선택했다.
그의 노래는 한 편의 시다. 보헤미안의 정서를 담은 노랫말은 떨리듯 미세하게 흔들리는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창법과 신비로운 기타 소리와 더불어 고요한 공간을 나비처럼 흐느적거린다. 형형색색의 감성을 실어 나르는 하모니카, 아코디언, 반도네온, 건반, 타악기 까혼(Cajon), 트럼펫, 첼로 소리들은 영혼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증으로 목을 마르게 한다.
최규성 : 앨범 타이틀 [열흘 나비]가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하다.
김두수 : [열흘 나비]는 불가의 상징으로 단 열흘을 살다가 마지막 날 정오의 태양을 향해 한없이 날아오르다 빛으로 산화한다. 이 나비를 한 번 본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이후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에도 눈길을 주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그 나비를 보길 갈망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상사병을 앓다가 남은 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최규성 : 당신의 노래 가사에는 나비가 참 많이 등장한다. 왜 나비라는 대상에 집착하는가?
김두수 : 집착은 아니고 나비는 정말 매혹적이다. 그야말로 애벌레에서 환골탈태를 해 아름답게 변신하는 흔치 않은 곤충이고 무엇보다 생명이 짧다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열흘 나비'는 실제로 존재하는 나비가 아니라 10일 정도 살다가는 나비를 말한다. 우주시간에 비하면 우리 삶도 짧지 않은가. 열흘은 짧음의 상징이다. 불가에 있는 표현이다.
최규성 : 그동안 당신의 음악에서는 유토피아적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흠모하는 나그네의 정서가 느껴졌었다. 이번 신보도 그 정서는 여전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조금 밝아진 느낌인데 실제로 생활이나 삶에 대한 정서의 변화가 있었는가?
김두수 : 내 음악엔 리듬이 강한 것은 드물다. 이번에 퍼커션 악기 중에 까혼이 가지는 고유의 경쾌함이 가미되어 밝은 느낌을 준 것 같다. 내가 연출을 하거나 공식을 상정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리듬을 좀 더 쓰고 싶다. 국내에서는 스튜디오 세션도 제한이 있어 다양한 악기들을 쓰지 못하는 점이 늘 아쉬웠다. 우리 한국의 음악들도 좀 더 다양화 되었으면 좋겠다. 악기 뿐 만 아니라 연주인들도 다양하게 교류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규성 : 이번 음반은 전작보다 더 몽환적이고 탐미적인 분위기가 강화된 느낌이다. 멜로디보다 회화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지고 가사 또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혹 불교나 철학에 관심이 있는가?
김두수 : 워낙 어느 편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동양인이니까 보편화된 정서를 갖고 있는 것뿐이다. 강한 임팩트를 주는 작업도 좋아하지만 이번 테마는 삶을 관조하면서 바라보는 길 없는 시간의 노래다. 나는 내 앨범에서 타이틀을 정하지는 않는다. 트랙에 있어 그 곡이 타이틀인가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고유의 의미 그대로다.
최규성 : 이번 신보 속에는 외국 악기도 등장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음악이란?
김두수 :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내가 하는 음악은 무조건 한국음악이라 생각한다.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정신에 배인 그런 것들을 음악적으로 더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내 음악의 그릇은 서양악기지만 그릇 안에 담긴 것은 한국의 정서가 배어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음악은 가볍게 터치할 수 없는 고유한 무엇이 있다. 판소리 같은 것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희귀한 소리다. 그런데 판소리와 기타는 의외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잘 어울리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음악도 어떻게 보면 음들의 집합이다. 서로 상이한 음악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음악이 나오지만 지금 같은 작법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기는 힘들다. 좋은 연주자는 많이 나오는데 작곡자는 나오지 못하는 것이 그런 이유다.
최규성 : 당신은 데뷔음반을 발표했을 때 단지 고려대생이란 이유로 심한 검열을 거쳤다. 그래서 '철탑위에 작은 새'가 가위질 당했고 하숙방을 조사당했었다. 하지만 당신의 은유적인 노래가 뭔가 의심스럽긴 해도 저항적이라 말하긴 힘들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 트럼펫 소리가 삼삼한 '시대는 전사(戰士)를 거두지 않는다'는 심상치 않은 노래가 한 곡 등장한다. 80년대 보다 지금의 사회가 더 뒤숭숭하다고 생각한 건가?
김두수 : 다른 분들에 비하면 내 음악은 가벼운 편이라 말할 수 있지만 나도 그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 중 한명이다. 구체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주변에는 적극적으로 운동을 한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세월이 지났지만 그 친구들에게 내 깐에는 일종의 레퀴엠을 바치고 싶어 시도해본 거다. 하지만 그 시대만이 아니라 이 땅의 소중한 것을 위해 먼저 가신 모든 분들에 위한 진혼곡으로 넓게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최규성 : 당신 음악은 장르규정이 힘들지만 클래식 악기들을 많이 사용하고 고급스런 분위기 때문에 아트 포크 록 가수로 규정한다. 실제도 당신은 음악의 장르구분에 의미를 두는가?
김두수 : 나는 어느 편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아트 포크록 가수란 표현은 부담스럽다. 아마도 제 스타일이 국내나 일본에서도 좀 낯설어서 그런 평가를 하는 것 아닌가? 국내 유일은 과찬이고 다른 분도 많이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내 삶이나 음악은 완성품이 아니라 아직 진화되는 도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최규성 : 당신의 노랫말은 멜로디를 떼어내면 한 편의 시로도 평가받는다. 시집을 발간한 가수들이 많은데 시집을 발간할 생각은 없는가?
김두수 : 없다. 시 자체는 고유의 음률을 가지고 있어 노래가 될 수는 있지만 노래 가사는 음가를 생각하고 작업한 글이기 때문에 멜로디를 떼어내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해 년 말, 홍대 앞 상상마당 라이브 홀 무대. 그가 등장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건만 200여명의 골수팬들이 아름아름 객석을 꽉 채웠다. 5집 [열흘 나비] 발매 기념 콘서트였다.
최규성 : 지난 년 말 앨범 발매 기념공연은 시작 전부터 객석에는 새로 발표한 음악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나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날 모처럼 팬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는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소감은?
김두수 : 사실 예정에 없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공연을 워낙 하지 않으니까 팬클럽에서 모금행사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음반이 나오면 기념공연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까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공연이었다. 홍보를 위한 공연이었다면 신보위주로 선곡했겠지만 4집 자유혼 때도 기타하나로 거의 공연을 했기에 제대로 구성된 자유혼 수록곡들을 들려주고 싶어 이번 음반에 참여했던 연주인들의 도움을 받아 풀 밴드로 시도했다. 공연이 무겁고 정적이니 재미있는 레퍼토리도 섞으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듣긴 한다. 예전에 중학생 때 로미오와 쥴리엣의 주제가를 카톨릭회관에서 불렀는데 골목길에서 기다리는 여학생들이 생겼었다(웃음). 다음 음악회 때는 청자들을 위해 신청곡을 한 번 받아봐야겠다. 하지만 내 공연을 찾아오는 분들은 오락적인 것을 기대하고 오는 분들은 아닐 거다.
최규성 : 당신은 본업이 가수인데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일을 가장 힘들어하고 얼굴을 드러내는 걸 꺼려 언제나 모자를 쓰고 다니는 묘한 사람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래서 대머리일 것이라는 오해도 있다(웃음). 헌데 실제로 말쑥하고 핸섬한 외모 아닌가. 혹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숨기는 것인가?
김두수 : 삶은 하나의 농담일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람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가수가 돼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수줍은 성격은 아닌데 나서는 걸 싫어한다. 그러니까 음악은 적성에 맞는데 사람들 앞에 서야 되는 가수란 직업은 적성에 맞지는 않는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편은 아닌데... 얼굴색이 빨갛게 잘 변하는 것도 원인일 수 있다.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 처음 기타를 잡았다. 삶의 모든 것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은 창작의 물꼬를 트게 했다. 데뷔곡 '시오리길'은 집에서 어머니 묘소까지의 거리를 의미한다. 걸핏하면 학교를 떠나 여기저기 도보여행을 다닌 그는 대학 졸업 후 잠시 직장에 들어갔지만 숨이 막혀 뛰쳐나왔다. 그래서 본명 '지서종'을 버리고 박경리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악당 '김두수'를 예명으로 삼고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무명가수가 되었다.
최규성 : 실제로 당신은 점잖고 조용하고 유머도 즐기는 성품이다. 헌데 당신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산 속에서 살았다는 전력과 몽환적인 음악 탓에 "약을 먹고 노래하는 것 같다"고 오해한다.
김두수 : 사람들이 다들 음악만 듣고 그렇게 오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두고 마약을 한다 안하다 내기까지 했다고 들었다(웃음). 고백컨대 나는 한 번도 마약을 해 본적이 없다. 이건 순전히 개인의 선택문제인데 옛날에 술안주 삼아 담배를 피운 적은 있지만 나는 담배도 별로다. 그냥 자연 상태가 더 좋다.
최규성 : 학창시절 도보여행 중에 '나비' 같은 명곡을 얻어냈다. 여행은 당신에게 큰 음악적 영감을 제공하는 것 같다. 여행과 음악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김두수 : 길 떠날 때 목적은 없다. 특히 작곡을 위한 여행은 없었다. '나비' 같은 노래들은 여행지에서 그냥 얻은 노래긴 하지만 목적을 가지면 여행의 기쁨은 반감된다. 이번에 서울에서 얼마간 살았을 때는 음악작업을 목적으로 살았던 정도다. 나는 여행지에서 얻은 감흥에 대해 뭘 노트를 하는 것보다 집에 돌아와서 작업을 하는 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곡 작업은 아무래도 조용한 밤에 많이 하는 편이다. 어둠을 표현하는 것이 꼭 사람들이 어둡다고 말할 때의 그런 느낌만이 아니다. 밤도 휴식이 되는 그런 느낌이다.
최규성 : '보헤미안'은 같은 곡을 듣고 삶의 희망을 찾은 사람과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신 노래는 너무 어둡다는 평가와 삶이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노래라는 양극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두수 : 나는 평화를 노래한다고 생각한 노래들이 엉뚱하게 절망이나 어둠을 노래한 것으로 들려진다는 반응을 들을 때 당황스럽다. 만약 절망을 안겨주는 음악이라면 존재 이유가 있을까 회의가 들어 다시는 음악을 하지 않을 생각으로 작업 노트들을 불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청자들이 내 음악을 듣는 동안 마음이 정화되고 짧은 명상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 내 노래가 삶이 고단한 분들에게 위안이 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면 김두수 음악은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진정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위로가 되고 평화를 주는 노래를 하고 싶다. 만약 또다시 자살 같은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면 더 이상 노래하기 힘들 것이다.
최규성 : 평생 음악을 할 생각인가?
김두수 : 음악은 아무리 중요해도 삶의 일부분이다.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떤 때는 아내조차도 날 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솔직히 음악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내가 평생 앨범을 낸다고 해도 벌써 중년의 나이니까 앞으로 4~5장 이상 더 내겠는가? 노래야 평생 부르겠지만 창작이 그치면 자연스럽게 음악이 그칠 것이다. 지나간 노래들은 이미 그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고 다시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데뷔 때 발표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할 때 고문처럼 느껴진다.
최규성 : 새 앨범을 일본제작사에서 어떻게 홍보를 하는가? 올해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김두수 : 2월 18일 일본 동경에서 단독공연을 했다. 국내 쪽은 일본회사에서 국내사정도 잘 모르고 있어 국내 배급사와 지인들이 기본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사실 나는 홍보에 의존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메스미디어하고 친한 음악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뮤지션은 앨범 발표 이후의 활동에 책임도 있지만 딱 음악까지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일은 내 역할이 아닌 것 같고, 재주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 여건이 주어진다면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단독공연을 해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최규성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두수 : 오늘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다(웃음). 나는 오늘처럼 내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곤혹스럽다. 내 노래에 대한 평가는 청자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평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평하는 것은 이미 나를 떠난 일이다. 다만 내 노래가 누구에게나 편안한 삶의 위로나 오랫동안 곁에 둘 수 있는 친구가 되길 소망한다. 다음에도 해외에 소개될 음반을 발표할 기회가 온다면 전래된 아리랑이 아닌 새로운 모던 아리랑을 시도해보고 싶다. '김두수 아리랑'을 록이나 포크로 풀어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장소 : 종로오피스텔 출판사 '선'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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