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가 출간 9개월여 만에 판매부수 100만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소설은 치매 증상이 있는 칠순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가족들이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부재한 엄마의 소중함을 고통스럽게 깨닫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지난해 11월 출간 직후부터 폭발적인 판매 행진을 펼치고 있다. 출간 석 달 만에 40만부를 훌쩍 넘기며 '엄마 신드롬'을 일으켰다. 판매 열기는 이후에도 식지 않아 지금까지 95만부가 팔렸다. 최근에도 대부분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종합 1위를 다투고 있어 이르면 이달 말 100만권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순수문학 단행본 소설이 9개월 남짓 기간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것은 국내 출판계에서 유례가 없다.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새로 써 가고 있는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좋은 딸 아니었어요… 서른살 지나서야 엄마가 다르게 보였죠”
신경숙 작가를 지난 13일 오후 서울 평창동 작가의 집 근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타난 그녀는 하얀 블라우스에, 옅은 화장, 소박한 웃음이 잘 어울리는 수수한 모습이었다.
한국출판인회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엄마를 부탁해'가 지난 주 다시 1위로 올라섰다고 운을 떼자 그는 "이 정도일 줄을 누가 짐작하기나 했겠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라고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소설이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소설은 시선이 딸, 아들, 아버지, 엄마 이렇게 넷으로 분산돼 있어서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예요. 그런데도 독자들이 엄마라는 존재에 감정이입해 들어가는 게 신기해요. 엄마에 대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서가 독자들을 소설로 끌어당긴 것 같아요.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전달받고 싶은 뜻이 많았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을 읽은 독자 중 눈물을 쏟은 이들이 많다는데.
"엄마라는 말 속에 짠한 게 있지요. 소설 속의 엄마는 우리 땅에서 살았다면 누구든지 느껴 봤음직한 누구나의 엄마죠.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어떤 상황에 놓이면 늘 뒤로 물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에요. 독자들이 흘린 눈물은 엄마라는 소중한 존재를 뒤늦게 발견하고 흘리는 정화와 치유의 눈물이 아닐까요?"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 한 거죠?
"엄마에게 위로를 받자는 게 아니라 엄마를 위로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엄마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닌가'하는,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소설 속 엄마 '박소녀'의 시대에 엄마들의 역할은 어땠고, 그런 엄마를 우리가 어떻게 방치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내 뜻과는 반대로 어머니에게 위로를 받자는 사회현상으로 부각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엄마랑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 엄마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며 "늘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어머니가 중심이 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엄마 이야기를 쓰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했죠?
"열여섯 살 때 고향에서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 올 때 동행했던 엄마가 제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셨죠. 우리집 모내기가 끝난 날이었는데 무척 피곤하셨을 거예요. 작가가 된다면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작품를 써보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 썼으니 약속을 너무 늦게 지킨 건가요?"라며 활짝 웃었다.
신씨는 "한국문학에는 의외로 엄마 이야기로 시작해서 엄마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장편소설이 거의 없다"며 "앞으로 또 다른 어머니 이야기가 쓰여질 때 이 소설이 기준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엄마에게 좋은 딸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엄마는 저에게 최고의 엄마였지만 저는 엄마에게 굉장히 무뚝뚝 했지요. 엄마가 가장 많이 한 말씀이 '다른 집 딸들은 다 엄마편이라는데…'라는 것이었죠. 저는 아버지 편만 들었어요. 그건 엄마가 강해보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엄마는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서른을 넘기면서 엄마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죠. 약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잘 울고 하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는 "소설도 다 제 운명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설도 엄마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전에 썼다면 '박소녀'와는 전혀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고 강인하고 흔들림이 없는 엄마상이 그려졌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 소설이 독자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 준 것처럼 작가도 이 소설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 편에서 생각하고, 상냥해지고, 만나면 안아주고, 하실 말씀 있으면 잘 들어주고 그렇게 변해가는 나를 발견한다"고 했다.
그는 요즘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지난 6월29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집중하고 있다. 청춘을 빠져 나오는 젊은이들의 비망록 같은 느낌의 소설이다. 그는 "시간이 더 흐르면 못 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즐거운 마음으로 연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글을 주로 새벽에 쓴다. 오랜 습관이라고 했다. 새벽 3시부터 아침 7, 8시까지는 완벽하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어둠 속에서 빛으로 가는 시간이라 축복받는 느낌도 들어 좋아하는 시간이란다.
-다음 작품은 무얼 생각하고 있나요?
"지금 연재하는 소설에 계속 따라붙어 오던 이야기예요. 떼어놓으려고 하다 보니 힘들었는데 다음에는 그걸 써야죠. 어느날 갑자기 앞을 못보게 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더는 비밀이라며 말문을 닫았다.
그는 등단한 지 올해로 25년이 흘렀지만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여전히 처음 쓰는 것 같고,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한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문학은 무엇일까. "내게 글쓰기는 현실이고 삶에 대한 반성이고 동시대인들과의 소통"이라며 "이 시대는 아주 다양한 삶이 펼쳐지고 있고, 각기 다양한 형태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작품이 인간이 지닌 아름다움을 상기 시키고, 잊어버린 것을 일깨우고, 무감각을 되살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복원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1시간30분 가량 이어진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가방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보여줬다. 2004년 국내에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였다. "내가 태어나던 해 서른 살의 나이로 자살한 미국의 격정적인 여성 시인의 일기인데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잘 드러나 있어요. 읽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죠. 한꺼번에 읽기엔 너무 아까워 '오늘은 이만큼만 읽자' 그렇게 정해 놓고 읽고 있어요."
내밀한 감성과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문체가 잘 드러난 작품들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신경숙. 그의 글쓰기의 힘은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문학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설렘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을까.
라동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