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애정편력기 몰운대, 민둥산, 병방치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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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정선은 마치 오지의 대명사인 양 불리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찾는 인기 여행지로 탈바꿈했다. 내가 정선에서 가장
매료됐던 곳은 동면의 몰운대였다. 1990년에 시외버스를 타고 정선에 내려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몰운대를 찾아갔다. 처음 가보는 정선에서
몰운대부터 찾은 것은 아마도 황동규의 시 「몰운대행」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산길을 따라 걷다가 길이 끝나는 자리에 커다란 소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 벼랑 끝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절벽 밑으로는 강물이 휘돌아 나가고,
오른쪽으로는 층층화벽과 너럭바위, 아름드리 소나무로 이루어진 계곡이 눈에 들어왔으며, 왼편으로는 너른 들이 펼쳐졌다. 너무나 아름다워 구름도
쉬어 간다는 그곳에서 나는 소나무에 기대앉아 해질녘까지 넋을 잃고 풍경에 취해 있었다. 그후 정선을 들르면 반드시 몰운대부터 찾았는데
언젠가부터 그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시작했고, 연륜과 기품이 느껴지던 벼랑 끝 소나무도 서서히 죽어갔다. 이제 나는 몰운대에 가고 싶지가
않다. 무엇보다 완전히 죽어버려 볼품없어진 소나무를 보는 게 너무나 가슴 아파서다. 가을에 정선에 가면 몰운대에 이어 어김없이 남면의
민둥산을 찾았다. 물론 민둥산 또한 이제는 가을의 억새 명산으로 유명해져 숨겨진 여행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둥산은 해마다 올라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산도 크게 가파르지 않아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데다 억새 풍경이 그 어느 산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을 햇살 아래 물결치는
억새의 군무는 황홀하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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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둥산 억새밭 사이 오솔길은 마치 솜씨 좋은 미용사가 사람 머리에
터놓은 가르마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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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은 마을 사람들이 산나물이 많이 나게 하려고 일부러 불을 놓아 민둥산이 되었다. 그래서 나무가 없는
대신 봄이면 산나물이 지천으로 깔린다. 민둥산을 오르다보면 발구덕마을을 지나게 된다. 발구덕은 팔구덕에서 나온 말로, 마을 주변에
여덟 개의 커다란 구덩이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땅 밑이 물과 진흙이 고인 거대한 석회동굴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빗물이 스며들어 석회암층을 녹여내 땅이 움푹 꺼지게 되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 마을에서 민둥산 정상까지는 대략
40분 거리.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급경사가 조금 있어 숨이 가쁘다. 억새밭은 8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이어진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오솔길 말고는 온통 억새 세상이다. 억새의 키도 어른만 해 억새밭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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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마치 이곳이 정점이란 듯 낡은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면 억새의 장관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억새밭 사이로 난
오솔길은 마치 솜씨 좋은 미용사가 사람 머리에 타놓은 가르마 같다. 억새는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의 해를 마주하고 역광으로 바라봐서 햇살에 반짝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2004년 겨울, 폭설이 내리는 정선에서 나는 또 다른 ‘몰운대’를 발견했다. 정선읍 북실리의
병방치고개였다. 동료 여행작가 두 명과 함께 그곳을 찾아갔다. 눈길에서 차가 미끄러져 도랑에 처박힐 뻔해가면서 악전고투 끝에
병방치고개에 다다랐다. 그 고개에서 내려다보이는 조양강의 풍광이 기가 막혔다. 몰운대를 처음 만났을 때 못지않은 감동이었다. 정선읍에서 불과
10여 분 거리에 이런 절경이 있다는 걸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날은 폭설에 안개까지 자욱해서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이듬해 여름과 가을에 다시 혼자서 병방치고개를 찾았다. 몰운대에서처럼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았다. 마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속 묵은
때가 깨끗이 씻겨져 나가는 것 같은 비경이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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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리-아우라지 간 7.2km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는 정선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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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래로 동강의 상류인 조양강이 귤암리 마을을 휘감고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그림 같다. 한반도 지형 같기도 하고 조롱박 같기도
하다. 저 멀리 성마령, 청옥산, 가리왕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병방산 밑으로는 강변마을 광하리에서 귤암리에 이르는 강변길이 아스라이
보인다. 예전에 귤암리 마을 사람들은 이 가파른 뱅뱅이재(병방치고개)를 넘어 정선읍내 장터를 오갔다고 한다. 귤암리에서 급경사인 병방산을
뱅글뱅글 돌아 올라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사람 붐비는 여행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던 몰운대도 민둥산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접수’됐다. 병방치고개도 곧 그 뒤를 이으리란 예감이 든다. 얼마 전 깔끔하게 마련해 놓은 전망대를 보며 눈치챘다. 아마 이 글
또한 일조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다시 정선에서 또 다른 ‘몰운대’와 또 다른 ‘병방치고개’를 찾아 나서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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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운대에서 바라본 눈 덮인 정선의 들판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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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 새말, 장평, 진부나들목 중 어느 곳으로 빠져나와도 된다. 몰운대는 동면 방향, 민둥산은 남면 방향이다. 병방치고개는 정선읍
북실리에 있다. 북실리 아리랑아파트 뒤쪽 언덕길을 따라 2km쯤 오르면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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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읍 동광식당(562-0437)은 콧등치기국수와 황기족발이 맛있다. 정선읍 농협 앞의 정선골황기보쌈(563-8114)은 황기를 넣어
삶은 돼지고기편육과 꿩만두 요리가 일품이다. 정선교 옆의 동박골식당(563-2211)은 곤드레나물밥으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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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읍에는 동호장(562-9000), 대림장모텔(563-7555) 등 여관이 많으며, 동면 화암국민관광단지 근처에도 여관이 있다. 민둥산
근처 증산역 일대에는 집현전모텔사우나(591-5545), 리버사이드(592-3326) 등의 여관이 있다. 가리왕산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563-1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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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리 레일바이크, 여량 아우라지, 동면 화암동굴, 화암약수, 소금강계곡, 광대곡, 정선읍 5일장, 노추산, 함백산, 숙암계곡,
항골계곡, 가리왕산자연휴양림, 강원랜드 리조트 등을 추천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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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번째행성 『대한민국 여행 고수들만 아는 호젓한 여행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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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들이 발로 뛰며 전국을 누비다 건져 올린 국내의 숨은 비경들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어주는 호젓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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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가 ‘동료 여행작가들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비장(秘藏) 여행지’를 메인
컨셉으로 한 여행서『대한민국 여행 고수들만 아는 호젓한 여행지』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인터넷이나 기존 여행서에서 많이
언급되던 곳을 피해 여행작가들이 발로 뛰며 전국을 누비다 건져 올린,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국내의 숨은 비경들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오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제철에 번잡한 여행지를 피하고, 좀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즐길 만한 곳들로만 여행지를 구성했다. ‘여행전문가인 동료 작가들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여행지’를 제1조건으로 내세운 만큼 지금까지의 국내
여행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하면서도 호젓한 여행지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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