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을 찾았다.
시 낭독 행사와 화장실 마무리 공사,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입구는 어수선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양갈래 길이 나왔다.
포장된 길보다는 흙길을 택했다.

길 위로 나서면 난 말문을 닫는다.
무리 속에서 벗어나 혼자이기를 자청한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탓인 지 가끔은 혼자이고싶다.
여행도 무리를 지어다니는 것보다
나를 기다려주고 혹여 내가 스쳐지나가며
못본 것도 챙겨주는 옆지기와 함께하면
잔잔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가느다랗게 줄기만 남은 갈밭 아래로 고운 자운영이 한창이다.

어렸을 때 저 나무를 버드나무라고 불렀는데 맞는 지 모르겠다. 줄기는 회색이고 잎은 둥근 삼각형인 버드나무는 과수원 주변에 높다랗게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는 유난히도 잎이 흔들거렸고 우린 저 나무잎을 떼어 잎사귀는 훑어내고 잎맥을 눈에 끼워 도깨비 모습을 만들며 놀았었다. 이처럼 자연은 우리들의 친구였고 좋은 장난감이었다. 그래서일까? 난 사람보다 이들이 더 정겹고 좋다.

나무 그늘 아래서 늪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스럽다.

늪 주변엔 갈대가 흐느적대며 서 있고, 그 아래엔 나즈막히 자운영이 피어있다.

왜가리 한 마리, 나처럼 홀로 뚝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다른 것 같다.

짝을 찾고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어디선가 그의 짝이 날아와 요란스레 소리를 지르며 함께 비상을 한다.

길을 막고 있는 자운영이 너무 고와 잠시 그와 눈을 맞췄다.

늪은 고요했다. 그는 그 속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체들을 품으며 오고 감에 연연해 하지않는 듯 미동도 않는다.
어디선가 작은 잠자리 하나 날아 들어와 쉴 곳을 찾는다.

물과 그 위에 떠 있는 부엽초들, 그리고 그 주변의 풀들이 함께 그려내는 작고 소박한 그림이 나를 머물게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우포늪이다.

5월의 꽃인 아카시아가 만발하였다. 그의 달콤한 향기가 계단을 오르는 무거운 발걸음을 잊게 해줬다.

저 멀리 바라다보이는 네모 반듯한 논 중엔 어쩜 우리 집 논도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새다리에 논을 샀다고 하셨다.
그 논들은 결국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세상사 모든 것은 머무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사랑도 돈도 명예도 마음도 청춘도.....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사 모든 것이 다 덧없다. 그저 쉼없이 수행하도록 하거라."
가끔 되뇌이며 탐욕스런 내 마음을 채찍질한다.

물 속에 두 그루의 수양버들이 아름드리 자리하고 있다.

처음엔 그도 볼품없이 작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고난이 그를 넉넉하게 만들었을테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도 만족해하며 편안해하겠지.

가끔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가 생각만큼 넉넉하지 않다는 걸 느낄 때이다. 나와 다른 남을 수용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그들 무리에서 나를 떠나게 하는 것이다.

조용하던 늪이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왜가리 두 쌍이 이리저리 날아오르며 요란을 떨었다. 그들이 있어 우포늪은 더 평화스러워 보였다.

시간이 없어 다가 갈 수 없는 저쪽 너머로 아쉬움의 눈길을 보낸다.

가을에 찾아오면 이들은 사그러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메꽃도, 자운영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이 이 곳을 채울테지.... 늪은 그들을 지켜볼 것이고...

이제 막 떠나왔지만 아직 저기 여유롭게 머무는 이들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처음 남겨둔 포장길을 따라 바삐 걸었다. 남편과 아들의 재촉에 하는 수없이
다음 여정을 위해 못다한 얘기 접고서 또 다른 길을 나선다.
[여유/ 데이비스]
무슨 인생이 그럴까.
근심에 찌들어 가던 길 멈춰 서 바라볼 시간 없다면
양이나 젖소들처럼 나무 아래 서서 쉬엄쉬엄 바라볼 틈 없다면
숲속 지날 때 다람쥐들이 풀숲에 도토리 숨기는 걸 볼 시간 없다면 한낮에도 밤하늘 처럼 별이 총총한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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