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세월의 흔적 (詩.이기철)

무아. 2010. 3. 16. 14:40
세월의 흔적


어느 너울이라도 세월의 때가 묻으면
후진 세월, 실밥 같은 그리움이 된다
가슴의 잉걸불로 끓이고 끓여 탕약이 된 시간이여
내 지나온 함양 산청의 실개쳔이여
그들 이름이야 부르면 모두 달려와
가슴에 꽃이 되어 매달리지만
이미 지워진 작년의 벼그루터기와 꽃설기는
다시 불러올 수 없다
내 걸어온 길목마다 한 필지의 슬픔과 한 필지의 기쁨을
무명 수건처럼 걸어놓은 세월
황강, 영호강의 저 우후죽순도
여름의 군단에 제 영지를 물려주고 나면
엎디어 혼자 우는 비루먹은 세월의 거렁뱅이가 된다

거창 지나 합천
하구(河口) 같은 터널 지나면 고령과 달성
그 어느 경계와 둔덕 너머
짠 소금기의 흔적 옷섶의 먼지 털 듯 날려보내면
질척이는 수렁 위에 한 송이 꽃은 피어
마음의 어둠 사르는 불꽃이 될까
혹은 어둠에 등불 켜는 별무리 될까
내 떠나보낸 세월의 흔적은


詩. 이기철

출처 : 시사랑
글쓴이 : 호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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