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록도 중앙공원에 세워진 한하운 시비./사진 ⓒ오마이뉴스 조호진
한하운은 생시에 별 탈없이 사회활동을 한 것처럼 알려져 있으며 그와 관련된 기록에도 나병은 완치되었는데 간장염으로 사망했다고 대부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병은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나으면 음성환자가 된다고 한다. 그는 월남하여 한때 방랑생활을 했다.
천형인 나병의 병고에서 오는 비통을 인내하면서 강인한 정신력으로 사회참여 내지 나병환자 시인으로서 큰 화제를 일으켜 한때 많은 시 독자를 얻기도 했다. 1950년 후에도 세 번이나 나병이 재발하여 남모를 고통을 느끼며 살다가 마침내 나병과 간장염의 합병으로 눈을 감았다고 국립소록도 병원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이렇듯 생시에는 나환자로서 정신적 갈등과 실향의 아픔까지 겹친 불운의 한 시인, 그 시인의 초라한 묘지에서는 매운 연기가 침묵으로 솟아 순례자들의 눈시울을 적시운다. 눈물의 언덕을 지나 다시 눈물의 언덕에 누워 지금도 보리피리를 부는지, 장능공원묘지는 김포비행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이륙하고 착륙하려는 비행기마다 독수리 발톱처럼 사납게 바퀴를 내밀고 그 폭음은 봉분의 늙은 잡초들을 흔들며 하늘을 찢는다.
이처럼 살아서도 죽어서도 철저히 외로운 한 시인의 묘지 앞에서 나는 무심히 돌아설 수 없었다. 꽃이라도 몇 송이 놓아드리고 싶었다. 시내로 내려가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하얀 국화 한 묶음을 사가지고 왔다. 하루라도 더 오래 피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석 위에 놓지않고 시비 앞에 땅속 깊이 꽂아 놓았다.
묘지 아래 차길을 따라가면 세한기계회사 곁에 큰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다. 버드나무 전면 도랑길을 따라가면 우측으로 아래서부터 아홉째줄 세번째 묘가 한하운 묘다.
소록도를 찾아서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千里 먼 전라도 길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전반부 생략
옛날 일제시대에 나환자들이 타고 다닐 차가 어디 있었겠는가. 걸어서 걸어서 순천 벌교를 지나 황톳길을 따라 고흥군 녹동에 도착, 배를 타고 소록도로 건너가야만 했다. 그것도 영하의 날씨 또는 여름 무더운 날씨에 환자의 몸으로 걸어서 가야 했던 그 고통스런 장면을 한하운은 시로써 잘 나타내주었다. 또한 하운은 나환자 구제운동에 크게 공헌하였다. 소록도 관계자에 의하면 “한하운은 소록도를 여러 번 다녀 갔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입원한 기록은 없으며 다른 나환자들을 위하여 다각적으로 동분서주하였다”고 말한다.
너들의 이름은 문둥이였다. (중략) 굽신거리던 허리는 이제 대지를 굽어 하늘을 향하는 일하는 허리가 되었다. 어서 욕된 얼굴을 쳐들어라…(중략) 여기 정착지에 서서 이제 한없이 눈감고 죽어도 좋은 살아보는 나의 세월에 서 있다 꿈에라도 생각치 못한 나의 세월이여
―<어느 정착지>에서
위 시에서 나타나듯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빌어먹는 나환자들이나 얼굴이 험하여 고개 한 번 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환자들, 인간대접을 제대로 받지못한 수 많은 나환자들을 위하여 한하운은 노심초사하며 살았다. 그는 소록도 정착지를 돌아보며 ‘이제 한없이 눈감고 죽어도 좋은/살아보는 나의 세월에 서 있다.’라고 읊은 그분이 만일 지하에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현재의 소록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워 할까
소록도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으로부터 해상 6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150만평 면적에 국립 소록도 병원을 중심으로 7개 마을이 있다. 국립 소록도 병원은 원래 1916년 소록도 자해원이라 칭하여 일본인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당시는 19만 9천평에 나환자 100명을 수용하였으나 1943년 말에는 5,575명의 많은 환자를 수용하였으며 1945년 해방 후 일부 불량 환자들의 폭동으로 80여 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1982년 국립 소록도 병원으로 개칭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종 시설물은 물론 운영 제도면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 관계자는 말한다.
한하운 시비는 공원 내 구라탑(救邏塔) 좌측에 있다. 시가 새겨진 빗돌은 1939년 소록도병원 제4대 원장 주방정계(周防正季)의 재직시 환자들이 바닷가에서 가로 370㎝, 너비 185㎝, 두께 60㎝의 돌을 목도해서 끌어다 놓고 망배석으로 사용해 오던 것을, 1972년 5월 17일 병원 개원 56주년 기념사업으로 시 「보리피리」 전문을 새겼다고 한다.
소록도 하면 우선 불결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한때는 나환자를 천형의 죄수처럼 사갈시 여겨왔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소록도를 한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이면 천형적 나병은 불치의 병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병은 낫는다’라는 공원 탑에 새겨 놓은 푯말과 음성환자들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모습 아래서 잘못된 선입감은 사라지게 된다.
현재 소록도는 유독(有毒)지대와 무독(無毒)지대로 이원화하고 있으며 유독지대(환자지대)의 경작지는 각 부락 공동으로 경작하고, 경작지 일부는 환자 개인별로 분할 배당하여 주로 채소를 재배토록 하고 있다. 앞으로는 경노동 수익사업을 연구 개발하여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소득증대를 기할 수 있는 사업을 연구 개발하여야 할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지금은 옛날 그 어렵던 시절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깨끗한 해수욕장 흰 구라탑을 중심으로 융단처럼 잘 손질된 잔디밭과 아름다운 상록수로 이루어진 병원 주변의 공원은 사철 변함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섬 대부분에 송림이 울창하며 갑만 굴곡이 수려하고 흰 모래밭과 푸른 소나무가 이어져 풍경이 아름답다. 일면 토질도 비옥하고 도처에 백화소차(白花蔬茶)가 무성하며 생활용수도 풍부하고 기후도 온화하다. 나환자 요양소가 아니라 낙원같은 느낌이 든다.
한하운 시비는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광명 2리 제주조각공원 신천지미술관에도 시 「보리피리」와 <파랑새>가 새겨진 시비 2기가 `세워져 있다.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되어 푸른하늘/푸른들/날러 다니며 푸른노래/푸른울음/울어 예으리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리/
―<파랑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