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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웃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다 中.... - 성석제

무아. 2010. 3. 1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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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다 中.... - 성석제


          절에 있는 화장실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화장실은 구덩이를 대단히 넓게 판다.
        그래서 용변을 볼 때면
        다른 재래식 화장실과는 달리 튀어오르는 반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래쪽에서 튀어오르는 물질을 피해 쭈그리고 앉은 채로
        이리저리 엉덩이를 휘두르는 일은 우습다. 그와 함께.
        어떤 사람이 절에 있는 화장실을 쓰기 위해 밤에 숙소에서 나온다.
        산중이라 아주 어둡고 고요하다.
        그는 조심조심 화장실로 발을 옮긴다.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래도 두려움을 이기고 치러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어둠 속을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문을 열려다 도시에서 배운 사람답게, 예절바르게,
        습관에 따라 화장실 문을 똑똑, 두드린다.
        그의 예상대로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다.
        그는 습관의 힘은 무서운 거라고 두려운 가운데서도
        우스워하면서 문을 열려고 한다. 그 순간 똑똑,
        하고 사람이 있다는 표시의 음향이 들린다. 그는 귀를 의심한다.
        이 야밤에, 이 산중에서 노크 소리를 듣다니,
        그래서 다시 똑똑, 하고 침착하게 두드려본다.
        역시 아무 기척이 없다. 그는 역시 잘못 들었지 하면서 문을 열려고 한다.
        그 순간 다시 반응이 온다. 똑똑,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는 공포에 휩싸인다. 어둠 속에서 거울을 마주보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볼일은 뒷전이다. 그의 공포가 그의 손을 들어 다시 똑똑똑, 두드리게 한다.
        이번에도 아무 기척이 없다. 그는 문을 열려고 문고리에 손을 댄다.
        그 순간 다시 그가 두드린 것만큼이나 다급한 응답이 들린다.
        똑똑똑! 그는 광란 상태에 빠진다.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또독, 두드린다.
        그때 문이 활짝 열리고 안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뛰어나와
        그의 뺨을 불이 번쩍 나도록 올려친다. 어디서 장난을 치느냐, 이 녀석아.
        그는 눈앞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절의 화장실은 다른 화장실보다 넓어서 노크에 응답하려면
        바지춤을 잡은 채 문간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돌아가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다시 나오는 데도 시간이 든다.
        돌아가는 데 시간이 든다.
        다시 나오는데 시간이 든다.
        그렇구나. 


        성석제 소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에서
        어처구니는 상상 밖으로 큰 물건이나 사람을 이르는 말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글쓴이 : bol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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