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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암괴석도 없고 유람선도 없다…유적지도 없고 펜션·카페도 없다, 멀고 먼 섬 ‘청산도’(문화일보)

무아. 2010. 3. 17. 10:19

느린 미소·더딘 걸음만 있다
기암괴석도 없고 유람선도 없다…유적지도 없고 펜션·카페도 없다, 멀고 먼 섬 ‘청산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parking@munhwa.com

당락리 언덕에서, 바다를 끼고 있는 도락마을을 내려다본 풍경. 오후 3시쯤 이 언덕에 서면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와 방풍림으로 심은 소나무들의 실루엣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 또한 황홀하다.
드라마속 청산도는 잊어주세요 세련된 색감 그림같은 풍경은 없습니다 촌스러운 슬레이트 지붕 뽀얀 먼지 앉은 버스 누추함에 가까운 구수한 삶이 살아있지요

2000년대의 청산도는 접어두세요 간편한 장례식도 최첨단 농법도 없습니다 상여소리를 매기고 구들장 논에 씨뿌리고 외양간에 메주 매달고 불편함에 가까운 소박한 삶이 펼쳐지지요


# 사람들이 멀고 먼 섬, 청산도까지 가는 이유.

서울에서 완도까지 5시간. 여기서 다시 페리호를 타고 뱃길을 따라 5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청산도. 청산도는 그야말로 ‘멀고 먼 섬’이다. 이렇게 먼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청산도에는 홍도나 울릉도처럼 감탄사가 터질 만한 기암괴석은 없다. 그래서 섬 관광지라면 예외없이 뜨는 유람선조차 아예 없다. 그렇다고 독도나 마라도처럼 ‘상징적인’ 섬도 아니다. 풍성한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가 변변히 있는 것도 아니다. 꽤 규모가 큰 섬이면서도, 그럴듯한 펜션은 물론이고, 그 흔한 카페나 PC방조차 하나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청산도를 찾아가는 것일까. 섬에서 촬영됐다는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봄의 왈츠’의 낭만적인 장면을 이유로 꼽을 수 있겠지만, 이미 영화는 낡았고, 드라마는 주인공조차 잊어졌다. 그나마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그려낸 풍경은 청산도와는 놀랄 만큼 어울리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 섬은 세련된 색감으로 그려져 있지만, 실제 청산도는 좀 누추한 쪽에 가깝다. 촌스러운 색조의 슬레이트로 얹은 지붕들이 옹송옹송 맞닿아 있고, 그 집들 사이로 먼지가 뽀얗게 앉은 청산여객 버스가 오간다.

역설 같지만, 그 허름함이 주는 익숙함이야말로 청산도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을 만하다. 이 매력은, 청산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른 봄의 청보리밭과 돌담길 풍경에 비견된다. 허름함은 ‘변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되, 그건 바로 섬안에서의 삶의 ‘느린 속도’를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섬. 그 섬이 바로 청산도다.

# 꽃상여와 함께 배를 타고 청산도에 도착하다.

이즈음 완도 여객선터미널은 한산하다. 하루 네 번 청산도를 왕복하는 ‘청산고속훼리’는 제법 위용이 당당하다. 그 배에 붉고 푸른 종이꽃으로 장식된 꽃상여가 승객들보다 먼저 실렸다. 섬 안의 누군가가 세상을 뜬 모양이었다. 터미널에서 배에 실을 차를 정리하던 한 직원은 “청산도에서 무슨 일이 났는지는 여기서 보면 다 안다”고 했다. 대부분의 일용품을 육지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배에 실리는 물건과 배송지를 보면, 섬안에서 누가 새 TV를 샀는지, 또 누구네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지 모두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청산항에는 다방도 있고, 식당과 모텔이란 이름을 붙인 시멘트 건물도 우뚝 서있다. 그러나 긴 고동소리와 함께 배가 항구에 닿자 리어카와 경운기들이 분주하다. 그러나 이런 분주함도 잠시. 배가 서둘러 차와 사람을 싣고 완도로 출발하자, 섬은 조용하다.

청산항에는 이리저리 둘러봐도 어판장이 없다.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도 손으로 꼽을 정도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도 없다. 마을의 앉음새도 그렇다. 대개 섬마을은 바다쪽으로 마을들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청산도는 달랐다. 구들장 논을 두고 바다에서 한껏 물러앉아있는 마을이 드물지 않았다.

청산도 주민들은 “바다가 기름지지 않아서…”라고 입을 모았다. 난바다에 떠있는 섬이어서 갯것들을 키워내는 개펄도 변변히 없고, 어장도 형성되지 않는다고 했다. 1960년대에는 삼치 등을 잡는 어업의 전진기지였지만, 어장이 아닌 외지 배들의 ‘기지’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청산도 사람들은 일찌감치 바다에 기댄 ‘어촌의 삶’보다는, 좁은 땅을 거친 노동과 바꿔 농사를 부치고 사는 ‘농촌의 삶’을 택했던 것이다. 바다에 고립된 농촌의 땅. 청산도가 육지세상의 속도에 미처 따라붙지 못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 구들장 논과 돌담, 그 고된 노동의 아름다움.

청산도에서는 어디에 서건 구들장논과 돌담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버선 목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처럼 유연하게 펼쳐진 돌담은 조형미가 넘친다. 청산도의 돌담은 바람을 막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땅을 개간하면서 나온 돌들을 어찌할 수 없어 쌓아둔 것이기도 하다. 청산도는 산도 푸르고 물도, 하늘도 푸르다고 해서 청산(靑山)이라는데, 사실 청산도에는 푸른 것보다는 돌이 더 많았다. 돌투성이 땅을 파서 나온 돌은 마을의 담과 길에 쌓아졌고, 논두렁에 쌓아졌고, 그리고도 남는 것은 중담이라는 돌무더기로 쌓아졌다.

청산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라면 단연 부흥리와 양지리 일대의 구들장 논을 들 수 있다. 구들장 논이란, 논 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이다. 육지에서라면 흔하디 흔한 게 흙이지만, 청산도에서는 그마저도 귀해 한줌이라도 아껴야 했고, 그렇게 만든 논에서 한 됫박의 쌀이라도 더 거둬들여야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청산도에서 구들장 논은 조형미 넘치는 풍경이지만, 한때 그 논은 척박한 땅을 증거하는 가난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쌀 몇 줌을 위해, 구들장 논을 만드는 식의 고된 노동을 감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청산도 사람들에게 아직도 농사는 고되다. 구불구불 이어진 논두렁에 경운기를 넣을 수 없어, 아직도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손수 낫으로 벼를 베고 있다.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청산도의 돌담과 구들장 논들에도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하나하나 돌을 캐내 만든 애환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지난 1996년 영화 ‘서편제’에 등장하는 황톳길이 모조리 시멘트 포장이 됐을 때, 외지 사람들은 ‘섬사람의 무지가 좋은 풍광을 다 망쳐놓았다’며 혀를 찼지만, ‘그대로 두면 더 돈이 된다’는 것을 몰랐던 마을 주민들의 ‘흐린 셈’을 탓할지언정, 그렇게 몰아붙일 일은 아니었지 싶다.

# 꽃상여 행렬을 따라가는 길.

청산도행 페리호에 실려온 꽃상여는 어디로 갔을까. 그날 저녁, 청산읍 지리의 상가를 찾았다. 완도에서 탄 배에 실려있던 꽃상여가 상가 마당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담 너머로 상가 마당을 기웃거리던 외지인에게 베옷을 입은 상주가 ‘요기나 하고 가라’며 팔을 잡아 끌었다. 돗자리가 펴진 상가 마당은 문상을 온 동네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벌겋게 달궈진 불 곁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술잔이 바쁘게 오가더니, 곧이어 흙마당에 커다란 멍석이 깔리고 한바탕 윷판이 벌어졌다. 타탁타탁 상가 마당 한쪽에 피워놓은 장작에서 튄 빨간 불씨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차가운 겨울 하늘은 온통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술상 앞에 상주를 불러 앉히고는, 망자가 외지에 사는 자식을 얼마나 끔찍히 생각했는지를 몇번이고 반복해 말했고, 국을 끓이느라 고기를 삶아내느라 바쁜 아낙들도 “이제 좋은 날이 올만하니까, 눈을 감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튿날 오전, 지리 마을회관 앞에서 상여가 나갔다. 청산도에서 나서 평생을 섬에서 보냈던 한 촌로가 꽃상여에 실려 마지막 길을 나섰다. 북을 들고 앞장선 상두꾼이 구성진 목소리로 상여소리를 매기고, 상여꾼들이 후렴을 붙인다. 유족들과 마을사람들이 상여 뒤로 길게 늘어섰다.

청산도에는 불빛이 어른거리는 상가집의 풍경도, 상여도 그대로 남아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관을 땅 위에 올려 놓은 뒤 이엉 등으로 덮어 두었다가 2~3년 후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초분을 만든다고 했다. 도회지 사람들은 ‘효율’을 따져가며 낡은 것들을 다 버리고 사는데, 왜 청산도 사람들은 누추하고, 초라한 것들을 못 버리는 것일까. 그들은 왜 아직 상여소리를 매기고, 구들장 논에 씨앗을 뿌려 청보리를 길러내고 사는 것일까. 청산도 사람들에게 정말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일까.

# 청산도 사람, 그리고 청산도를 보는 법.

청산도 당리로 들어서자마자 외양간에 메주를 매달고 있는 배영자(여·65)씨를 만났다. 버선발로 꼭꼭 밟아서 빚었다는 메주를 짚으로 엮어 외양간 처마아래 꼼꼼하게 매달았다. ‘하필 외양간이냐’는 물음에 “여서(여기서) 말려야 젤(제일) 잘 마른단 말씨(마른단 말이야)”라고 답했다. 그리곤 곧 이쪽으로 질문이 넘어온다. 어디서 왔느냐, 뭐 하러 왔느냐, 어디를 가봤냐…. 그러더니 ‘밥은 자셔겠소(먹었소)’는 질문을 던지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새참으로 담아왔을 시루떡을 쑥 내민다. 하기야 전날 상가에서도 그랬고, 이른 새벽 버스를 기다리던 노인도 외지인의 밥 걱정부터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산도가 ‘슬로시티’라면, ‘슬로’란 생태와 환경을, 또 전통과 문화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닐까. 낯 모르는 상대를 쉽게 지나치지 않고, 찬찬히 마음을 열고 자신의 것을 툭 던지는 관계는 지금 세상에서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곳이 어디 청산도뿐일까. 강원 정선 조양강가의 고요한 마을이나 경북 봉화의 금강송이 우뚝 서있는 산골마을도 마찬가지다. 청산도가 슬로시티의 인증을 받았다면, 그건 바로 ‘느린 시간을 가진 곳’들을 ‘기려서 마땅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해준 것이 더 값진 것이 아닐까.

청산도가 ‘슬로시티’란 외국에서 온 타이틀을 달았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슬로시티’란 이름은, 느리게 사는 것이 속도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님을 깨치도록 하는 데 그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그 타이틀을 얻었다며 ‘슬로시티’를 이마에 딱 붙인 농산물부터 팔 궁리를 하거나, 관광객부터 꾈 생각부터 하고 있다면 그 타이틀은 안 붙이니만 못하리라.

한 장의 사진과 같은 풍경을 보고는 ‘그곳을 다 보았다’고 하지 말 일이다, 특히 그곳이 청산도라면. 풍광만 감상하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도회지에서 맹렬하게 달려온 속도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청산도의 느린 시간과 맞춰보는 일, 또 구들장 논의 돌을 매만져 보거나, 상여소리를 따라가 보는 일이 더 값진 여행의 수확이 될 듯싶다. 느린 곳을 찾을 때는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느려야 하는 것이거늘….

완도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삶도… 죽음도… 쉬어가네!

‘슬로시티’ 국제인증 받은 전남 완도군 청산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parking@munhwa.com

청산도 당리에서 읍리 쪽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청보리밭 풍경. 돌을 계단처럼 쌓아 만든 다랑논에 청보리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 청산도의 청보리밭은 이른 봄이 가장 아름답다지만, 솜털 같은 억새와 어우러진 이즈음의 풍경도 봄 못지않다.

청산도 당리에서 만난 배영자(여·65)씨가 외양간 처마에 메주를 매다는 모습. 외양간의 송아지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북을 들고 앞장선 상두꾼의 상여소리를 따라, 꽃상여가 지리해수욕장 앞을 지나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뒤를 따랐다.
그 섬에서는 시간이 더디고, 또 부드럽게 흐릅니다. 이른 봄에 청보리밭 길이 아름답다는 전남 완도군의 청산도입니다. 유려하게 쌓인 돌담을 휘휘 돌아서 ‘천천히 가는 시간’의 아름다움. 그 느린 시간의 아름다움은 영화 ‘서편제’의 롱테이크 샷에서 익히 목격한 바 있지요. 그 청산도의 ‘느림’이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청산도가 전남 신안의 증도, 담양의 장평면, 장흥의 유치면과 함께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슬로시티(이탈리아 명 치타슬로) 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인증을 해주건 안 해주건, 그게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청산도에서의 시간은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로 흘러갈 것이고, 섬마을의 아름다운 돌담이며 ‘구들논’의 풍경도 달라질 것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예부터 느린 삶을 지켜온 섬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늦게나마 인정해주는 기념비쯤으로 쓰인다면 ‘슬로시티’의 국제인증은 축하해 마지않을 일입니다.

그 슬로시티로 가는 길입니다. 전남 완도에서 청산도로 드는 뱃길. 해무가 짙게 끼어있던 날이었습니다. 완도여객선터미널 앞에는 일찍부터 배편을 기다리던 손님이 있습니다. 색색의 종이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꽃상여. 청산도 주민 중 누군가 세상을 뜬 모양입니다. 꽃상여와 함께 ‘청산고속훼리’를 타고 청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청산도 선착장에서는 대통령 선거 후보의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섬마을은 조용한데,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새 세상을 열어보이겠다는 포부가 거센 해풍에 저 혼자 펄럭입니다. 여의도 면적 14배의 작지 않은 섬. 그러나 하루 세 번 완도행 페리호가 오가는 청산항은 작은 다방과 밥집 몇개, 그리고 아직도 지난 봄에 붙여 놓았을 ‘입춘대길’을 유리창에 붙여둔 구멍가게가 있을 뿐입니다.

돌아올 때쯤 알게 된 것이지만, 청산도에서는 ‘한 장의 사진’ 같은 아름다운 풍광만을 찾아다닐 일은 아니었습니다. 섬마을에 지천인 다랑논과 구들논, 견고하고 유려하게 쌓은 돌담과 이제 막 싹을 틔운 청보리들이 모두 다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청산도의 구들논은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해며 지리산 일원의 다랑논은 수없이 봐왔지만, 이런 논은 처음입니다. 구들논이란 구들을 놓듯이 돌로 바닥을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노동으로 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폭이 겨우 2m도 안 돼서 쌀 몇말이나 나올까 싶은 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경보다는 섬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투박한 삶이 뭉클하게 마음을 끌어당겼습니다. 구들논의 조형미보다는 그 구들논을 놓았을 고된 노동의 손이, 한 촌로가 갓 빚은 메주를 외양간에 내거는 풍경보다는 그 촌로가 불쑥 내미는 시루떡 한 조각이 더 감동적이었던 것이지요. 윷판이 벌어져 떠들썩한 상가(喪家) 마당에서 타닥거리는 장작불의 불티가 밤하늘로 올라 가득한 별 사이로 사라져버리는 모습도 사람들의 온기로 더 아름다웠습니다. 잊고 있었던, 오래 된 삶의 모습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 섬에서는 좀처럼 느린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선착장 앞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도, 그제서야 주전자에 물을 담아 난로에 얹어놓는 속도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민박집 아저씨도 “고작 하루 반나절 동안 뭘 보겠느냐”며 “더 묵고 가라”고 손을 잡아 끌었지만, 예정되지 않은 일정에 익숙지 않아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언젠가 일을 놓고 시외버스를 갈아타면서 천천히 청산도에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낯선 도시에서 청산도에 ‘슬로시티’란 이름을 붙여주기 이미 오래전부터 청산도는 ‘느린 삶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이 땅에 그런 곳이 청산도뿐이겠습니까. 다만 우리들이 그것을 몰라봤던 것이지요.

완도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parking@munhwa.com

 

가는길, 완도서 하루 네번 페리호 왕복 운행
머물곳·먹을것, 깔끔한 민박집 많아 섬 이야기는 보너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parking@munhwa.com
◆ 청산도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까지 가서 나주 ~ 영암 ~ 강진 ~ 남창 ~ 완도로 들어갈 수 있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종점인 목포나들목에서 나와 강진 ~ 남창 ~ 완도로 찾아갈 수도 있다. 둘 다 거리는 비슷하지만, 호남고속도로를 타면 광주의 시내구간을 통과해야 하므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택하는 편이 낫다. 완도에는 대모도와 청산도, 덕우도, 제주 등으로 가는 여객선이 뜨는 완도여객터미널이 있고, 노화도와 보길도로 가는 배가 뜨는 화흥포항이 있으므로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고속버스 편으로 완도까지 가서 완도공용터미널에서 택시로 여객선터미널로 이동하면 된다. 서울에서 완도까지는 5시간 30분 남짓. 여객선터미널까지 택시는 기본요금이 나온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는 하루 4편의 페리호가 왕복한다. 청산도로 들어가는 첫배는 오전 8시10분, 마지막 배는 오후 5시20분에 있다.

청산도에서 완도로 나오는 배는 오전 6시50분에 첫배가, 오후 4시에 마지막 배가 뜬다. 배삯은 대인 6250원. 페리호에는 차량도 실을 수 있는데 일반승용차는 완도에서 청산도로 들어가는데 2만4600원을 받는다. 청산도에서 나오는 배에는 터미널이용료가 붙지 않아 2만원이다. 청산도에서는 4륜구동 택시가 운행한다. 사람 수에 관계없이 일주 코스(1시간 30분)를 돌아주고 3만원을 받는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먹을까 = 이즈음 청산도에는 예약없이 가도 여유있게 민박을 잡을 수 있다. 청산항에는 주로 허름한 모텔 스타일의 숙소가 많다. 해수욕장 부근에도 깔끔한 민박들이 많다. 대표적인 숙소가 지리해수욕장의 한바다민박(061-554-5035)이 객실이 깨끗하고 위치도 좋다. 청산도 토박이인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청산항에는 식당이 몇 개 있다. 식사는 다채롭지는 않지만 남도음식의 진한 맛을 보는 데는 그리 부족함이 없다.

출처 : 그대가 머문자리
글쓴이 : 초록장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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