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화산 아래 옛 절터와 석등 - 합천 모산재와 영암사지
사진 파일을 정리하다 몇 년 전 사진을 발견하였다.
합천 영암사지와 모산재
온통 바위산인 모산재와 그 아래 다소곳이 내려 앉아 천년의 세월을 한 몸에 드러내는 영암사지,
해발 767m인 모산재는 황매산의 한 줄기에 솟아난 봉우리이다. 봄이면 붉은 철쭉이 온 산을 물들이고 가을이면 억새가 날을 저물게 한다.
아래 사진들은 3년 전 초가을 벼가 누륵 누륵 익어갈 쯤으로 기억된다.
가을 모산재는 바위가 주는 황량함과 벼랑에 위태위태하게 걸려 있는 철계단의 절박함, 차분히 내려 앉은 찬 공기로 인해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절로 생각나게 한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中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모산재
# 영암사지 가야산과 지리산의 중간지점인 황매산 모산재 남쪽 기슭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사찰이며 영암사라는 절 이름은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왔다. 다만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탁본으로 남아 있는 적연국사자광탑비(1023년 건립)의 비문을 통하여 고려시대에 이곳에 영암사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이 석등은 역사적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사람들이 이 석등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몰래 반출하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눈치 채고 다시 빼앗아 원래의 위치에 세웠다고 한다. 절이 있는 가회면민들의 작지만 위대한 싸움의 결과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은 어떤 건물도 없었던 이 터에 한 옥 두 채를 옮겨 세워 절을 보존하게 되는 정성까지 보이게 된다. 지금도 그 한옥 건물은 쇠락한 채로 옛 터에 남겨져 있다.
석등 중간 중간에는 그 때 부러진 흔적으로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게 곳곳에 보인다. 보물 제353호이다.
석등은 영암사지 뒤의 모산재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금당지 오르는 석등 양 옆으로 통돌을 깍아 만든 돌계단이 놓여 있다. 경사가 급하여 난간을 만든 흔적이 있으며 금당지에 오를 때 좀 더 경건하게 오르도록 설계되었다.
사자의 엉덩이가 토실토실하여 귀엽다 못해 약간은 섹시하다.
석등 쌍사자 사이로 삼층석탑(보물제480호)이 보인다.
금당 앞 쌍사자석등은 높이가 2.3m로 아담하지만 높은 축대 위에 자리를 잡아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그 모습이 장쾌하다.
금당지에 새겨져 있는 사자상 사자가 아니라 귀엽고 통통한 복슬강아지 같다.
출처 : 김천령의 바람흔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