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나는 아버지보다 늙었다
무아.
2010. 3. 16. 14:54
나는 아버지보다 늙었다
박진성
내 몸은 아버지보다 늙었다 아버지
앞에서 자주 눕다 보면 그걸 안다
아침녘에 그이가 내 방문을 열 때
나는 밤새워 뒹굴다가도 쌔근쌔근 숨을 쉬며
잔다, 자는 척 한다 어떤 날은 십 분씩 이십 분씩
아버지가 내 몸 그석구석을 만지는데 그럴수록 몸이
뻣뻣해진다 그러다 잠들기도 한다 病과
같이 지낸 9년이 아픈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저희들의 첩첩산성을 쌓아둔 안정제의
안정한 성곽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한약 팩을 울분으로 잘라내는 습관적 손놀림이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오늘 아침은 아버지 핏발 선 눈이 아프다
아침인데도 그리로 해가 지고 있다
응급실에서 돌아온 아침에 그이는
蘭이 겨울을 나는 법이라든가
癌에 결렸다가 살아났다는 윗말 김씨 얘기를 한다
그 얘기를 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당신도 안다
그이의 아버지 朴龍文씨(1918~1997) 주민등록증을 지갑 속에
아직까지 넣어 다니는 걸 나도 안다
생몰 연대가 없는 금강에서 아버지는 나를
껴안는다 스물일곱의 내가 바라보는 錦江 노을, 내 몸을
죽어라 껴안고 있는 그이의 심장이 펄떡거린다
비단강에 몸 푸는 목숨이여,
비단 같은 탯줄 끊고 비단처럼
아름다운 나라로 가라,
처음 세상 나실 적처럼 우는 아버지,
나는 건강한 産母로 강바람에 오래 달궈진
버드나무 잎들을 미역 대신 따 먹으리라
아버지, 불쌍한 내 자식,
ㅡ박진성 시집 <목숨> 천년의 시작
출처 : 무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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