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기다림

무아. 2010. 3. 16. 14:49

 

 


        기다린다는 것은
        잠시 허망에 빠지는 일이다

        그가 오리라는 확신이 차츰 허물어지며
        통로 저쪽 문 밖까지 나가 선 나의 간절함이
        차츰 아픔으로 기울어진다

        쓸쓸한 음악이 흐르는 찻집,
        석양이 얼비치던 창도 커피색이다
        오리라는 기약이 있었던가
        잠시 나의 기억을 의심해 본다

        시간은 굴삭기처럼 가슴을 파고 들고
        점점 내 앞자리의 빈 공간이 더 커진다
        쓴 커피를 다시 한 잔 시키고
        부질없이 성냥개비를 분질러 숫자를 세고
        지나간 날들이 다 헐릴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기다린다는 것은
        숨통을 끊는 일이다

        때로는 기쁨으로 가슴 설레다가
        차츰 커피잔이 식듯 아픔과 쓰라림과 절망으로 이어지는
        형벌 같은 것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절절함 속에서
        모질게도 단련되고 길들여지는지


        오늘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기다림을 놓아둔 채 찻집을 나선다
        저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꺼질 듯 꺼질 듯한 사랑을
        애틋하게,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김종목

 

 

출처 : 무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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