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너는 떠나고, 나는

무아. 2010. 3. 16. 14:49

너는 떠나고, 나는

 

 

 

그리하여 너는 떠나고 나는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남고 너는 떠나게 되었다
바람이 어둠의 등을 떠밀어 전신주들은
긴그림자에 기대어 건들거리며 휘파람 불고
사람이 아쉬운 마을마다에
불빛들은 반딧불처럼 모여드는데
먼데서 가까운데로 되돌아오기 위하여
너는 떠나게 되고 나는 남게 되는지


지레 겁을 먹은 나무는 분주히
가지를 접으며 주저앉고
머큐로크롬을 쏟아부은듯한 노을이
저녁의 이마를 적시며 지나가는 시간
돌아선 네 뾰족구두의 뾰족한 그 끝이
뾰족한 기억으로 나를 찌른다, 아주 아프게

 


차라리 네 가는곳
모래 언덕들 사슬처럼 맞물려 흐르고
전갈이 발목을 깨무는 사막이라면
선명한 바람의 무늬따라 걷다가 길을 잃고
마침내 푸른샘의 기억을 지닌
한포기 선인장으로 네가 태어난다면, 그러나
그러한 네 풍문이 들려오기도 전에 나는
바다로 가야 한다, 거기서 나는
미리 보아야 한다
갇힌 물들이 세월처럼 풀리는 것을


-너는 떠나고, 나는/강윤후

출처 : 무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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