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의자

[스크랩] 생일파티

무아. 2010. 3. 16. 14:46

생일파티

 

 

 

 

 

싱싱한 고래 한 마리 내 허리에 살았네

그때 스무 살 나는 푸른 고래였지

서른 살 나는 첼로였다네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잘 길든 사내의 등어리를 긁듯이

그렇게 나를 긁으면 안개라고 할까

매캐한 담배 냄새 같은 첼로였다네

마흔 살엔 장송곡을 틀었을 거야

검은 드레스에 검은 장미도 꽂았을거야

서양 여자들처럼 언덕을 넘어갔지

이유는 모르겠어

장하고 조금 목이 메었어

쉰 살이 되면 나는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어

오히려 가볍겠지

사랑에 못박히는 것조차

바람결에 맡기고

모든 것이 있는데 무엇인가 반은 없는

쉰 살의 생일 파티는 어떻게 할까

기도는 공짜지만 제일 큰 이익을 가져온다 하니

청승맞게 꿇어앉아 기도나 할까



문정희(1947~), '생일 파티'

출처 : 무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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