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복음

[스크랩] 밀어내기

무아. 2010. 3. 15. 00:12


노부부 / 정호승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못 눠서 고민이다 
어머니는 관장약을 사러 또 약국에 다녀오신다 
내가 저녁을 먹다 말고 
두루마리 휴지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안방으로 모시고 가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늙은 팬티를 벗기신다 
옆으로 누워야지 바로 누우면 되능교 
잔소리를 몇 번 늘어놓으시다가 
아버지 항문 깊숙이 관장약을 밀어넣으신다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안 나온다고 밥도 안 먹는다 
늙으면 밥이 똥이 되지 않고 돌이 될 때가 있다 
노인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사촌여동생은 
돌이 된 노인들의 똥을 후벼 파낼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늙은 뒤에 또다시 늙는다는 것은 
밥을 못 먹는 일이 아니라 똥을 못 누는 일이다 
아버지는 기어이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다녀오신다 
이제 똥 나왔능교 시원한교 
아버지는 못내 말이 없으시다 
아머니는 굽은 등을 더 굽혀 설거지를 하시다가 
너거 아버지 지금 똥 눴단다 
못내 기쁘신 표정이다 


바다가 보이는 화장실 / 정호승
바다가 보이는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면
바다가 똥 누는 나를 엄마처럼 들여다본다
어떤 때는 파도를 데리고 달려와 들여다보고
어떤 때는 갈매기를 데리고 날아와 들여다보고
또 어떤 때는 고래 한 마리 데리고 달려와
똥 누는 나를 데리고 바다로 간다
나는 아기 고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내 어릴 때 첨성대 앞 초가집에 살 때는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지붕도 없는
별이 보이는 화장실이 있었다
별이 보이는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면
아기별들이 와르르 내 가슴에 쏟아졌다
아기별들을 데리고 첨성대 창문 속으로 들어가
밤새도록 놀다가 창밖을 내다보면
별들도 똥을 누고 사라지곤 했다
나는 요즘 바다가 보이는 화장실에 가면
팬티까지 벗은 늙은 내 몸을
바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얼른 창을 닫는다
죄 많은 똥을 다 누고
은근히 창을 열고 바다를 바라보면
멀리서 섬들이 놀리는 줄도 모르고
수평선에 서서 오줌 누는 아이들이 보인다

 
마음의 똥 / 정호승 
내 어릴 때 소나무 서 있는 들판에서
아버지 같은 눈사람 하나 외롭게 서 있으면
눈사람 옆에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똥을 누고 돌아와 곤히 잠들곤 했는데
그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유난히 함박눈이 많이 내려
내가 눈 똥이 다 함박눈이 되어 눈부셨는데
이제는 아무 데도 똥 눌 들판이 없어
아버지처럼 외롭고 다정한 눈사람 하나 없어
내 마음의 똥 한 무더기 누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출처 : 수연까페
글쓴이 : 징한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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