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학과 길 여행> 도종환의 산경
‘문학과 길 여행’ 세 번째 이야기_도종환의 <산경>
시 짓는 공간, 구구산방 말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있다. 사람은 그 자신 혼자라서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벗한다. 사람 옆에 산이 있다. 산은 산대로 사람과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스스로 바람소리를 만들어내고 녹음을 만들어내며 사람 옆에 가만히 있다. 다람쥐 역시 언어가 다르니 사람과 대화할 수 없고 산과도 대화를 할 수 없다. 다람쥐는 숲 속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지내는 시인의 마당에 와서 도토리 몇 알을 먹고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시인 도종환이 시를 짓는 공간 ‘구구산방(龜龜山房)’. 구구산방은 창작의 공간 이전에 자연과 동물과 사람이 동거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시인은 누군가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하루를 보낼 때도 있지만 서글프지 않다. 서글프기는커녕 호미에 흙을 묻히며 일을 하고, 일을 끝낸 후에는 계곡 물에 호미를 씻으며 감사해한다. 손에도 흙이 잔뜩 묻었지만 손의 흙을 씻어내려고 안간힘 쓸 필요는 없다. 호미를 씻는 동안 자연스럽게 손의 흙도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시인은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 묻지 않는다. 무슨 일을 했다고 해서 앞산과 뒷산에 꼭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 허물없이 하루가 간 것만으로도 자족할 수 있다. 그 자족의 공간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구구산방이다. 구구산방은 도종환 시인의 지인이 암에 걸린 동생의 투병 생활을 위해 지었던 황톳집. 지인의 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지인은 심신이 약해진 시인에게 시도 짓고 요양도 하라며 권했고, 도종환 시인은 별 고민 없이 이곳으로 짐을 옮겨 시 짓는 방으로 삼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숲 속 황톳집에 이르는 길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곳에서 지은 시 중 ‘산경’은 무욕의 삶을 실천하는 도종환 시인의 작품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뱀과
다람쥐가 제 집 드나들듯…
시인이 구구산방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전교조 활동과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 시대의 담론을 실천하다가 심신이 피폐해져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기로 작정한 후부터였다. 시인으로서의 성취를 이루었으나 더 큰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무와 풀과 산 속의 동물들과도 일체화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참 걸어 나가기 전에는 가게도 없고, 술집도 없고, 이웃도 없는 산 밑이었다. 시인은 무섭기도 했지만 구구산방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뱀이 방에 들어와 똬리를 틀고 앉아 있기도 했는데, 그는 뱀을 쓰레받기에 담아 마당에 내놓았다. 뱀은 시인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고 마당에서 몸을 말린 후 사라졌다. 뱀이 시인의 방에 들어왔던 것은 단순히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 이후 시인은 외출할 때면 마루에 다람쥐를 위해 밤 몇 톨을 올려놓는다. 시인의 집 뒤쪽에는 나무 걸상 몇 개, 장작 몇 개가 놓여 있다. 교실을 바꾸면서 내버린 걸상을 들고 온 것이다.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으니 나무 걸상은 그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장치인 동시에,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기 위한 상징인 셈이다. 한지
마을, 17년 만에 생명이 태어나다
염티재를 내려서서 문의면 소전리 한지 마을에 이르는 길로 들어서면 저 아래 대청호 물빛이 까마득한 듯 벼랑 아래에 펼쳐져 있다. 문의 지역은 예부터 한지의 원료로 쓰이는 닥나무 자생지로 유명했던 곳. 그중에서도 벌랏한지마을은 임진왜란 때 피난 와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영위했던 사람들의 터전이다. 그곳이 지금 다시 한지 마을로 태어나고 있다. 그 벌랏한지마을에 들어서니 한 꼬마 아이가 보인다. 소전리의 최연소 아이인데, 소전리 마을에서 무려 17년 만에 태어난 ‘생명’이다.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민들이 떠나고, 물에 잠기지 않은 마을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다보니 남은 사람들은 거개가 노인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날 리 없는데,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녀석은 화가 이종국과 명상가 이경옥씨가 늦된 결혼을 한 후 낳은 아들이다. 그러니 녀석은 소전리 마을의 천연기념물 격이다. 어린 생명은 꽃과 다름없으니 녀석이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걱정하고, 울음보라도 터뜨릴라 치면 모두 달려들어 달래는 ‘귀인’인 것이다. 떠난 자들의 기억이 새겨진 대청호 대청호반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그 길은 물과 함께 가는 길, 굽이굽이 휘어져 흐르는 물결에 따라 길도 휘어진다. 그 모습이 꼭 사람 사는 모습을 닮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굽은 길이 있는가 하면 오른쪽으로 굽은 길이 있다. 그렇게 뻗어나간 대청호는 대전시를 포함해 청원, 보은, 옥천군에 걸쳐 있다. 문의문화재단지에 들어선다. 물가에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 강둑의 비탈을 개간해 밭작물을 심었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대청호 주변을 떠났고 단지 문의문화재단지의 ‘문의 수몰 유래비’가 그들의 떠남을 아스라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수몰민, 그들도 역시 도종환 시인처럼 흙 묻은 손을 계곡 물에 씻으며 삶을 살았으나 그들의 삶터에는 지금 물이 흐르고 문화재단지 민속마을에 향취만이 남아 있다. 대청호의 물빛을 따라 도는 시간은 그러니까 이 땅의 잊혀진 길과 새로운 길을 동시에 기억하는 장치이다. /글·사진 임동헌(소설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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