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스크랩] 옛집은 감동이다 - 윤증고택
무아.
2010. 3. 14. 00:16
옛집은 과학이다 옛집은 감동이다 |
충남 논산시 노성면 윤증 고택을 읽다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parking@munhwa.com |
#
배롱나무 붉은 꽃 아래에서 옛 집 보는 법을 새로 배우다
조선 후기 소론 계열의 대학자였던 명재 윤증. 여러 차례 임금의 교지를 받았으나 벼슬자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 ‘백의 정승’이라고 불렸던 학자. 그의 고택이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있다. 배롱나무가 심어진 연못과 어우러진 사랑채의 운치가 빼어난 한옥이다. 그러나 평생을 방 2~3개짜리 초라한 집에 살던 스승이 안타까워 제자들이 지었다는 이 집은 멋스러움이나 풍류만으로는 해독되지 않는다. 고택의 비밀스러운 진면목은 집안에 들어 스다듬고, 매만지며, 밖을 내다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첫번째 비밀은 비틀어진 집의 앉음새에 대한 것이다. 한옥 안채의 처마와 창고로 쓰이는 곳간채는 나란히 놓이지 않았다. 북쪽은 두 채의 건물이 처마가 붙을 듯 가깝고, 남쪽은 처마 사이가 멀다. 왜 이렇게 건물을 삐뚤어지게 앉혀 놓았을까. 고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윤증의 13세손인 윤완식씨가 “건물 사이가 좁은 쪽에 서 보라”고 권한다. 남쪽 넓은 건물 사이 공간으로 들어온 바람이 북쪽의 좁은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속도가 빨라진다. 겨울이면 북풍이 좁은 건물 사이에서 넓은 쪽으로 불어 바람끝이 유순해진다. 아하, 이른바 ‘베르누이의 정리’다. 유체는 좁은 통로를 흐를 때 속도와 압력이 증가하고, 넓은 통로를 흐를 때 속도와 압력이 낮아지는 원리. 그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그렇게 바람이 빠른 곳의 곳간채 북쪽 끝은 ‘찬광’이다. 통풍이 좋고 차갑게 보관해야 할 것들은 모두 이 찬광에 넣어두었다. 무려 300여 년전 이 집을 지은 이가 ‘베르누이의 정리’를 알았을 턱이 없지만, 오랜 경험과 정성으로 집안의 바람 속도까지 제어할 줄 알았던 것이다. 두번째 비밀은 시선에 대한 것이다. 고택의 안채는 ㄷ자형이지만, 터져있는 부분도 안행랑채가 막아서 실제로는 ㅁ자형이다. 그래서 안채의 대청마루에 앉으면 사방이 막혀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곳에 앉으면 놀랍게도 밖이 훤히 보인다. 안채로 드는 문 앞의 내외벽은 바닥에서 30㎝정도의 빈공간을 두었다. 그 틈사이로 드나드는 이의 신발이 보인다. 비단신을 신고 오는지, 짚신을 신고 오는지, 여자인지 혹은 남자인지 틈사이로 신발만 보고 알 수 있게 해놓았다. 또 건넌방의 안쪽과 바깥문을 열어놓으면, 열린 두 개의 문을 통해 절묘하게 사랑채 뒤꼍으로 드는 문이 눈에 들어온다. 안채의 깊은 대청에 앉아서도 이쪽으로 누가 들고, 누가 나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안채의 방에서는 사랑채에 딸린 뒷간으로 가는 길이 보이도록 해놓았다. 사랑채를 찾아 오래 기거하는 남정네들은 뒷간 출입을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여자들이 이쪽만 보고도 누가 머무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놓은 배려다. 안채의 ‘시선’에 좀 과장을 보태자면 마치 폐쇄회로 TV의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세번째 비밀은 문이다. 고택에서 가장 눈을 끄는 것은 단연 사랑채다. 3대가 기거하도록 만든 사랑채 누마루의 창은 대화면TV와 같은 16대9의 비율이다. 이쪽으로 고택 앞의 마당과 연못쪽을 내다보면 배롱나무와 들판이 대화면에 꽉차게 들어온다. 사랑채에서 어떤 창이나 문을 열어도 한폭의 그림이다. 마당쪽으로 난 창이나 문은 말할 것도 없고 안채쪽으로 난 창을 열어도 조형적인 담벽과 굴뚝들이 기막힌 그림을 선사한다. 창을 열면 보이는 나지막한 굴뚝이 왼쪽으로 치우쳐져 구도가 뛰어나다. 굴뚝을 내면서도 창으로 보이는 조형적인 구도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그림이 딱딱 맞아떨어질 수 없다. 사랑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른바 ‘미닫이 여닫이문’이다. 4쪽으로 된 미닫이 창호문을 양옆으로 드르륵 밀어 연 뒤, 문을 툭 밀면 여닫이문처럼 활짝 열린다. 마치 아파트의 ‘확장된 베란다’처럼 트인 공간이 돼버리는 것이다. 문의 형태를 뜯어보자면 무릎을 칠 정도로 간단한 원리지만, 이런 문을 갖고 있는 집은 이곳 윤증 고택이 유일하다. # 고택에 향기를 더해주는 깃든 사람들의 삶 이렇듯 고택은 빼어난 아름다움과 정성이 담긴 비밀을 간직하고 있지만, 윤증은 제자들이 정성껏 지어준 이 집에 기거하지 않았다. 윤증 고택은 정작 윤증이 기거하던 곳이 아니어서 더 감동적이다. 조선후기 소론의 기초를 다진 대학자였던 윤증은 평생 단 한번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청빈하게 살았다. 초라한 집에 거주하는 스승이 송구스러워 제자들이 정성껏 집을 지어 내주었지만, 정작 윤증은 ‘큰 집이 내겐 과분하다’며 기거하던 초라한 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윤증이 ‘큰 집’이라며 들지 않겠다고 했던 집도 실상 경남 안동 일대의 으리으리한 고택에 비하면 채 반의 반도 되지않는 규모다. 겉모양만 보자면 안채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작고 초라할 정도다. 고택에서 또 놀라는 것은 작은 제사상 때문이다. 명문가로 꼽히는 가세에 비해 제상은 일반 밥상크기에 불과하다. 추석의 차례상에도 송편도 없고, 전도 올리지 않는다. 제사에는 탕도 올리지 않는다. 그건 윤증이 “제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 것이며, 일꺼리가 많은 유밀과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말라”고 한 유언때문이다. 이런 가풍은 누대에 걸쳐 이어져 그의 후손들은 100여년 전부터 일가의 설날이나 제사, 생일을 모두 양력으로 쇠고 있다. 학문과 삶을 일치시키려던 대학자의 정신은 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 배롱나무 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종학원 정수루에 오르다. 일대의 명문가였던 파평 윤씨의 문중서당이 바로 종학원이다. 윤증의 백부인 윤순거가 종중의 자제들을 가르치던 곳인데, 이 종학에서 배출된 대과 급제자만 42명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 1999년부터 4년여에 걸쳐 원형을 복원한 종학원에는 종학당, 보인당, 백록당, 정수루 등의 건물이 널찍하게 들어서있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이 바로 누각인 정수루다. 마치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연상케하는 모습인데 계단을 딛고 오르는 만대루와는 달리, 정수루는 돋아놓은 땅을 밟고 바로 오르도록 돼있다. 정수루에 올라 내다보면 바로 가까이는 연못과 종학당 주변의 아름드리 배롱나무꽃이,병사리 저수지의 물빛과 건너 마을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종학당 쪽에 서면 배롱나무 꽃과 돌담 사이로 아름다운 처마를 이고있는 정수루의 한쪽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기가 막히다. 비록 정수루는 한쪽이 불탄 것을 후대에 복원한 것이고, 백록당 등에서는 지금도 여름방학이면 파평 윤씨의 후손들을 모아 교육을 하는 등 활용하고 있어 보일러까지 들였다. 하지만 복원과정에서 정성껏, 그리고 솜씨있게 마무리해 놓은 탓에 옛 맛을 크게 해치지 않아 여행자의 입장에서 주제넘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 미내다리에서 강경포구쪽으로 지는 노을을 보다 논산에 볼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강경 미내다리를 보고 왔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던 논산 강경읍의 미내다리. 강경천을 넘는 이 다리는 충남과 전북을 이어주던 길이었다. 미내다리의 규모를 지금의 다리들과 견줄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무지개 모양(홍예)의 돌다리는 제법 위용과 기품이 느껴진다. 다리는 일대의 세도가들이 추렴해서 지은 것이라는데, 당시만 해도 자신의 필요때문이 아니라, 다리를 지어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을 ‘좋은 업을 쌓는 일’로 생각해서 일대의 부호나 승려들이 다리를 놓는 일이 많았다던가. 여기다가 송시열을 배향한 돈암서원의 ‘처진 배롱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소나무처럼 배롱나무도 처진 것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돈암서원의 배롱나무는 ‘처진 배롱나무’라고 할 밖에 다르게 표현할 말이 없다. 단아한 서원 건물을 두르고 있는 담장 아래의 배롱나무 가지에 매달린 꽃들은 마치 땅에 닿을 듯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또 은진미륵이 우뚝 서있는 관촉사에서 우람한 석등사이로 보이는 미륵의 얼굴을 대하는 맛이며, 논산 쌍계사의 꽃살문을 찬찬히 살펴보는 즐거움도 있다. 개태사의 무인과 같이 선이 굵고 우람한 삼존불을 만나도 좋다. 논산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타고가다 공주의 정안나들목에서 국도로 빠져나와 공주외곽 우회도로를 거쳐 논산 방향(국도 23호)으로 향한다. 공주로부터 약 20㎞ 지점쯤에 노성면으로 나가는 구 도로와 윤증고택가는 길의 표지판을 설치해 놓았다. 논산 방면에서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노성면쪽으로 약 9㎞쯤 가면 된다. 노성면 사무소와 인근해 있으므로 면사무소를 먼저 찾아가면 편리하다. 파평윤씨 종학원은 윤증 고택에서 가깝다. 탄천나들목 쪽으로 가다 저수지를 제방을 지나 오른편으로 꺾어져 들어가면 종학당이다. ◆묵을곳 먹을것 윤증 고택에서 한옥체험을 겸해 숙박할 수 있다. 숙박을 하지않더라도 후손 윤완식씨(041-735-1251)에게 미리 연락하고 안내를 부탁하면 자세한 집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고택은 후손들이 기거하고 있는 곳이라 들고날 때 예의를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논산시 취암동의 이른바 ‘오거리’ 일대에는 깔끔한 모텔과 여관들이 즐비하지만, 유흥가와 같은 분위기 탓에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탑정호를 끼고있는 레이크힐호텔(041-742-7744)이 가장 권할만한 숙소다. 숙박비는 일반실이 5만원선으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편이다. 논산의 먹거리로는 탑정호 주변인 부적면 신풍리의 식당들의 붕어찜이 첫손으로 꼽힌다. 논산시민들이 가장 쳐주는 곳이 붕어마을(041-733-2308)이다. 1인분 1만원. 박경일기자
|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