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스크랩] 당신이 여행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

무아. 2010. 3. 14. 00:02

1989년초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24세의 여성 제이미 제파는 내면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영문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준비 중이었으나 왠지 삶이 초라하고 작아 보였다. 이 즈음 캐나다 세계대학 봉사단이 부탄에서 일할 영어 강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자 덜컥 지원했다. 이혼한 부모를 대신해 그녀를 키워준 할아버지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펄쩍 뛰었다. 듣도 못한 아시아의 소국(小國)에 가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벌써 마음이 히마라야를 떠돌고 있었던 그녀는 뭔가 압도하는 경험 속에 나를 밀어넣고 싶다며 부탄행을 결행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원제 Beyond the Sky and the Earth)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 3년6개 월간의 부탄 생활의 기록이다. 흘깃 스치고 지나가는 관광객의 눈으로 쓴 여행기가 아니라 깊이 있는 문명비판서에 가깝다. 부탄은 흔히 ‘은둔의 왕국’이라 불린다. 고도 2천~3천m이상의 고산 지대인데다 면적은 한반도의 3분의 1 정도, 인구는 1백 여만 명, 1인 당 국민소득은 5백 달러.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 있었지만 식민지가 된 적은 없을 정도로 독립적인 국가였다.

제임스 힐튼이 소설<잃어버린 지평선>(1933년)에서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을 묘사한 이래 서양인들은 히말라야에 파묻힌 티베트나 부탄 지역을 동경해 왔다. 인간의 영혼과 정신이 문명에 때묻지 않은 채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는 곳으로 여겼던 것이다.
나흘에 걸쳐 다섯 차례나 비행기를 갈아타고서 내린 부탄의 풍광은 이런 환상을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투명한 햇볕 속에서 물결 치는 우뚝 솟은 산들, 그 너머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봉우리 하나가 위엄에 차 빛난다. 눈을 돌리면 초록색 강물과 그 위에 걸친 고풍스런 나무 다리. 하얀색 벽과 금색 첨탑을 가진 성벽은 또 어떠한가. 하지만 부탄의 일상을 맞딱트리면서 환상은 깨졌다. 눈이 산길을 가로 막아 발령지에 3주나 늦게 도착하고 버스는 언제 도착할 지 기약이 없고, 길은 질퍽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방에는 생쥐와 벼룩이 득실거리고 천장에선 비가 줄줄 새고, 식수는 또 얼마나 불결하던지…. 편리함과 위생적인 것에 길들여왔던 그녀로서는 견디기 힘든 악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의 따뜻하고 맑은 심성을 만나면서 저자는 서서히 부탄 사람이 되어 갔다. 무엇보다 부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전쟁과 굶주림이 10초짜리 뉴스로 탈바꿈하지도 않았고 보다 날씬하고 섹시한 사람이 되라고 속삭이는 광고도 없었다. 대신 산들의 육중한 침묵을 느끼고 유유히 흐르는 강의 손짓에 이끌리는 것으로도 충만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산업화되기 이전의 부탄 사회나 시골 공동체를 마냥 목가적으로만 예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양의 전통 사회는 무조건 추켜 세우는 순진한 오리엔탈리즘, 혹은 서구식의 이국 취미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부탄에 만연한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순응주의를 못마땅하게 보았다. 선생이 부르는데도 느릿느릿 걸어왔다는 이유로 학생의 따귀를 예사로 때리고, 국왕 행차 때 모두 고개를 숙인 채 행렬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학생들은 창의적인 자기 의견을 말하기 보다 정답만 외우려고 해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저자는 개인와 자유와 독창성이 존중되면서도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는 없을까 고민한다. 이런 점에서 스웨덴의 여성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녹색평론사)를 떠올리게 한다. 히말라야 고원 서부에 자리잡은 라다크라는 공동체에서 16년간 살았던 호지는 근대화의 발길에 채여 그 아름답던 라다크 땅이 어떻게 황폐해지고 사람들이 얼마나 영약해져가는 가를 그려냈다.
호지는 어차피 산업화가 불가피하다면 권력 집중과 문화의 획일화를 막는 적정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제이미 제파는 책에서 부탄 청년과 사랑에 빠져 마침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털어놓는다. 교수와 제자라는 관계, 외국인과의 결혼에 배타적인 부탄사회의 냉소를 이겨내면서 일궈내는 사랑의 도정은 소설처럼 드라마틱하다. 자본주의의 삼투작용으로 지구촌에 ‘청정지역’이 사라지고 있다. 개발은 안락함과 장수(長壽)를 주는 대신 순박함과 정신적 여유를 앗아갔다.
세계화의 세찬 물결에 밀려 왜소해진 자아와 건강한 삶의 모습을 어떻게 건져낼 것인가. 서구보다 더 서구적으로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인에게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이영기, 중앙일보, 2003.5.23일 자

 

중남미 라틴 7개국 만큼 왜곡된 곳은 없다. 척박한 고산 지대, 열대 정글, 헐벗은 원주민들, 끝 없는 내전, 강도나 도둑으로 얼룩진 관광지…등 위험한 모습들이 그것이다. 실제의 중남미는 다양한 기후와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고도로 발달한 장엄한 문명들과 높은 정신 가치가 살아있는 매력적인 땅.게다가 저렴한 물가는 가히 세계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알짜 여행의 천국이다. 이 대륙에 홀딱 빠져 7년 간을 걸어서 돌아다닌 한 '정신 나간' 여성 사학도(정지은)의 놀랍도록 세세한 여행 노하우를 전수 받는다 김현덕 기자(서점모퉁이) , 국민일보, 2002.5.21

 

환경은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서 빌려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매우 겸손하고 잠언적인 표현이지만 그 안에는 기술 문명에 의한 자연 파괴가 미래의 지구 재앙을 몰고 올 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담고 있다. ‘환경’과 ‘생명’은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가장 강력한 화두 중 하나다. 그러나 대안 없는 폭로는 그 자체가 너무 폭력적이다. 아무리 과학적이라 하더라도 천문학적 숫자로 우리를 압도시키기만 하다가 급기야 숫자에 대한 무감각에 이르게 한 면이 없지 않았다. 환경운동 생명운동도 기로에 와 있다. 그 기로에서 이 책은 모종의 영롱한, 매력적인 희망을 닮은 빛을 내뿜는다.

이 책은 50대의 아버지가 10대의 아들에게 마련해주는 1주일 동안의 지구환경 여행이다. 월요일은 아랄해의 오염 경로와 물의 중요성, 화요일은 자연과 환경문제, 수요일은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 목요일은 생명의 고귀함과 어린 세대 역할의 중요성, 금요일은 독일 내 인종 차별과 미국 고교 총기사건, 토요일은 복제양 돌리 등이 여행의 주제다.

왜 이 책이 기로의 희망 혹은 전망인가?

‘이 세기말에 말들은…그 뜻을 잃어버렸다…숫자 또한 마찬가지다’(14쪽). 소설가인 지은이는 강력한 서정성을 구사하면서 우리를 ‘언어 숫자에 대한 무감각’에서 해방시키고자 노력한다. 그것을 현상적으로 떠받치는 것은 신화. 그러나 신화만으로는 복고적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시간적 미래감과 여행이라는 틀이 구사하는 내면성과 외면성의 변증법의 종합이다. 그 종합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면 이것은 정치적 대안을 포괄하는 문학 예술적 대안을 위한 초석이 마련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아이를 위한 서정성이 미래를 위한 서정성으로 되고, 여행의 말미에 ‘아이’가 ‘어른’을 극복한다. 신화사 중 가장 감동적인 ‘상처 받은 어머니 대지’ 장면 중 하나인 이집트 이시스오시리스 미이라 신화에 이어 더 감동적인 ‘대화의 결론’으로 이 책은 끝난다. 옮긴이는 ‘서정적인 원문’을 제대로 못살렸다고 했지만 번역문 또한 충분히 서정적이다.
동아일보, 2001.1.13일자



이 땅의 굿 판에는 먼 옛적 자기를 버린 부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서천서역으로 감로수를 구하러 떠났던 바리데기 공주의 아련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유명한 무속설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살려낼 수 없을까. 서역 중앙아시아의 비단길은 곧 바리데기 공주가 호랑이 만나고 밭 갈며 저승길을 통과하고, 낯선 사내의 아이를 일곱이나 낳아주며 약수를 구했던 고난의 여정이었을 터. <한겨레신문>그림판으로 필명을 날렸던 만화가 박재동씨가 2000년 10월 영화감독 장선우씨와 의기투합해 벌인 비단길 기행은 바리데기의 길을 되밟으며 작품의 상상력을 떠올리겠다는 속셈으로 한 일이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팀 사람들과 소설가 김영종 씨, 장 씨의 부인과 친구들까지 동행한 34일간의 제멋대로 여행에서 박씨는 일 이상의 무엇을 발견했다. 마음의 지도를 넓히고 행복과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그 무엇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자금성에서 바양블라크 호수까지’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심각하지 않게 내 몸을 여정에 맡겨버릴 생각”으로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 않은 채” 쓴 실크로드 기행문이다. 지은이는 첫 기착지인 베이징부터 마지막 여정인 인도의 델리까지 주요 여정의 현장을 일일이 500여 장의 스케치와 메모로 요약하며 여행길의 여러 인상기를 적고있다.

출발 전 여행가 한비야씨로부터 작가가 들었다는 “사람은 다 다르고 다 똑같다”는 말은 이 기행기의 열쇠말이 된다. 실크로드 유적과 지역유래에 대한 지극히 피상적인 설명을 뺀다면 그의 서술은 대부분 사막과 초원 유목민들의 인정과 현지 사람 냄새 나는 풍광들에 대한 단상이 여행객의 생래적인 호기심과 엉켜있다. 텐산 산맥 기슭의 호수 바양블라크 기슭에서 행자는 눈 먼 몽골족 소년 키티붐바이의 노래 <천당>을 듣고는 황홀하고 슬픈 감정에 저절로 눈물을 흘린다.

“지상에서 떨어진 천사의 천국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아니 그냥 초원이었다. 그 속의 황금덩어리 같은 풀잎이었다…그 모든 것이 한줄기 눈물로 변해 흘러내리고 있었다.…만리장성과 병마용과 돈황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이…이 한 줄기 눈물에 씻겨 내려가 버리고 있었다…노을 속의 그 눈물은 우리 여행의 정점이었다”
“이곳 사람들에게서 늘 느끼는 것은 우리가 다가가서 구경을 해도, 사진을 찍어도 언제나 빙그레 웃는다는 것이다. 경계심과 적의는 찾아볼 수 없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늘 만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을 선의로 대한다는 사실이다.”(호탄지역의 위구르인들을 보고)
“옛날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을 싣고 로마로 가던 사람들이 비단을 금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듯 우리도 이렇게 문명이라는 비단을 싣고 금을 구하러 다닌다. 그런데 그 금은 다른 데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 또 가슴 속에서 언뜻언뜻 빛나고 있었다.”

스케치라는 차별적 형식을 통해 그는 화가의 눈과 손으로 돈황의 토굴집, 달밤의 사막, 투르판 교하고성과 고창고성의 처연한 정서, 순진무구한 낙타떼 등의 이미지를 색다르게 옮기고 있다. 꼼꼼한 눈과 손으로 사소한 유적들의 자취를 그냥 놓치지 않고 있다. 해발 2000m의 텐산산맥 기슭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돌단 ‘오보’를 보며 우리와 동질의 문화의 초원유목문화를 생각하며 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에 골몰하기도 한다. 호탄가는 길에 들른 케리야 마을 노천극장에서의 제작회의, 칸막이 없는 화장실에서 ‘똥’을 함께 나누는 중국의 배변문화 등에 대한 익살스런 설명이 곁들여진다.

박씨 일행은 ‘무쇠갓 쓰고 무쇠신발 신고 피나는 고생길을 간’ 바리데기와 달리 ‘카메라와 스케치북과 돈을 들고 비행기와 차로 편하게 다닌’ 여정이었지만 현지인들과 만남, 숱한 유적들과 황홀한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지은이는 마음의 지도를 넓히는 체험을 얻는다. 자금난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은 끝내 보류되었지만 잠든 바리데기는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이 세계에서 소중한 하나의 본질임을 책은 일러주고 있다. 파키스탄의 장수촌 훈자를 보고 느낀 단상을 토대로 직접 지은 <샤위나>나 <구름궁전 공주 이야기> 등의 동화들이 특유의 필선과 어울려 비단길의 상상력을 피워올린다.
노형석기자 , 한겨레신문, 2003.5.17일자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혹시 이 책이 신세대 부부의 치기어린 투정쯤이 안될까 싶은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책에 빠져들면서 어느 정도 그 편견을 수정해야 했다. 범상치 않은 '지구촌 답사 강행군' 을 자청한 뒤 그 속에서 여물고 단단해져 가는 주인공 부부의 사랑, 그리고 이 과정에서 리얼하게 리포트된 여행 정보를 접하다 보면 시샘 같은 것도 솟아났다. 저자는 올해 서른한 살 동갑내기로 남편(여세호) 은 카피라이터요 아내(배영진) 는 방송작가다. 대학 동기동창으로 5년간 연애 끝에 결혼해 4년간 한 이불을 덥고 산 이들에게도 권태기는 찾아왔다. 이혼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끝장나는 '위기일발' 의 순간, 둘은 배낭을 꾸려 해외여행에 나서는 극적인 반전의 지혜를 생각해 낸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 길은 무려 2년 20일간 지속됐고 발 품을 판 나라만도 40여 개 국에 이른다. 여정은 필리핀에서 시작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이어졌다. 이 책은 이런 여행의 기록이다. 저자들은 그 장기간의 여정에서 각양각색의 사람과 풍습, 문화를 체험하면서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시간으로 하이텔에 연재했다. 1998년 11월부터 2000년 12월까지의 일인데, 이 때 쓴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인터넷 세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고 보면 부부에겐 신세대란 표현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어떤 일에서 계기는 역시 중요하다. 그 일 전체의 컨셉트를 결정하기 때문인데, 이혼 직전이라는 계기가 아니었다면 여행기의 대부분은 그저 놀고 먹는 일로 채워졌을 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사색의 흔적과, 균열을 조금씩 메워가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씨는, 그래서 중요하고 가치있어 보인다. 필리핀에서 만난 로즐린이라는 창녀를 보고 저자들은 이렇게 한탄한다.

"돈벌이가 필요한 가장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그들의 딸들은 그렇게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가난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에 관심을 갖는 정치가들은 이 나라에나 우리나라에나 극히 드물다. " 굳이 이 같은 사회적 발언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저자들은 여행을 하면서 어느새 '나' 를 허물면 그 속에 '남' 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그런 변화의 과정을 가감없이 적었다. 한쪽이 빨리 걷기만해도 홱 토라져 '네 탓' 을 하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반쪽' 임을 깨닫는다. 결국 그 동안의 알력은 '하나를 위한 이중주' 였던 셈이다. 이런 열린 태도는 여행 중 숱하게 접하는 이질적 문화와 세상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가 된다. 이번에 나온 제1권은 '아시아와 북유럽' 편이며,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와 서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편은 조만간 2.3권으로 엮어져 나올 예정이다. 새 스타일의 여행서로 평가할 만하다..
정재왈 , 중앙일보, 2001.5.12일자

해발 4천m가 넘는 티베트족의 라롱 마을. 주민들은 새를 통해 영혼을 하늘로 보낸다. 영혼이 떠나 빈 고깃덩이에 불과한 시신은 독수리 떼의 먹이가 된다. 티베트인들의 전통 장례의식 '천장'이다. 사진작가 박하선(49) 씨는 지난 1997년과 2000년 약 40일 간 쓰촨성 동북쪽에 있는 라롱 마을에 머물며 티베트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사진집 <천장>에 담아왔다. 이 가운데 일부는 97년 한 잡지에 실렸던 것이다.

천장은 오래 전 인도에서 시작된 뒤 승려들에 의해 티베트인들에게 뿌리내린 장례 의식. 나무나 물을 찾아보기조차 힘든 건조한 자연환경에서 시작된 것일 게다. 중국의 강점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티베트인들은 이 의식만은 버리지 않았다. 천장은 사원 앞에서 여러 스님들이 염불을 외는 '포와' 의식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먼저 시신의 머리쪽을 드러내 영혼이 빠져나가도록 한 뒤 땅과 하늘이 맞닿은 천장 터로 향한다. 이미 영혼이 떠난 육신은 뭇 생명에게 자신의 살과 뼈를 내준다. 장의사 구실을 하는 천장사는 독수리가 먹기 좋도록 살을 발라 놓기도 한다.

티베트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이해 못하는 이들은 천장을 '잔인한 풍습'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때문에 티베트인들은 이런 장례의식을 이방인에게 내보이길 꺼린다.
사실 천장은 불교의 네 가지 근원적 물질인 땅, 물, 불, 바람으로 시신을 회귀시키는 의식이자, 독수리를 타고 생명의 고향인 중음계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구현한 장례 의식일 뿐이다. 이렇게 티베트인들에게 죽음이란 또 다른 시작으로서,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못된 사람은 독수리도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사진집엔 글이 거의 없다. 흑백의 명암이 이승과 저승을 가르듯 침묵만 가득하다. 이런 침묵은 주검 곁에 모여든 독수리 떼나 장례 의식을 치르는 티베트인들의 무표정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한다.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며, 집착할 것인가. 티베트인들에게 세상은 도무지 미련 둘 곳이 아니다.

박 씨의 이 작품들은 지난해 세계적 사진 컨테스트인 월드프레스포토에서 데일리 라이프 스토리스 부문을 수상했다.
김영희 기자 , 한겨레신문, 2002.2.16일 자

"모래알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은 안쪽 세계를 갖고 있다." 소설가 서영은(59) 씨가 산문집 <안쪽으로의 여행>(바다출판사 발행)을 출간했다. 새 산문집에서 서 씨는 "소설이라는 역동적 장르에서는 행간 속으로 파묻혀 버린 나직한 속삭임 같은 이야기를 산문으로 쓴다"고 했다. 사진 작가 탁인아 씨가 찍은 40여 장의 흑백 사진이 나직한 속삭임과 동반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안쪽이 있음을 알게 된 작가는 그것을 살그머니 들여다보기로 한다. 항아리의 안쪽, 말린 고구마 줄기의 안쪽, 사진 패널의 안쪽, 빈 집의 안쪽… 모든 안쪽에는 추억이 있다. 어머니는 딸을 장독대로 데리고 가서 항아리 뚜껑을 여닫는 법, 장을 떠내는 법, 떠낸 뒤 뒷마무리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대학시절 좋아했던 과 선배는 여자의 집을 찾아와 기다리면서, 먹으려고 말리던 고구마 줄기를 지근지근 밟았다. 가전제품 세일즈맨인 동생은 한때 판넬 속 영화 사진 같은 근사한 예술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우물 안에 빠져 죽은 시체가 있다는 빈집에 들어간 꼬마는 또래 아이가 읽었을 법한 책과 신었을 법한 고무신만 찾아냈다. 오래된 기억은 가슴이 아리다. 너무 많이 슬프지는 않지만 쓸쓸한 심정이 된다. '책장을 넘긴 곳에는 여백에 아이가 연필로 그린 누군가의 얼굴 그림이 있었다. 그러자 정체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금방 누군가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올 것 같은데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사람이 살던 흔적이 이토록 남김없이 부서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특별히 애잔한 것은 함께 살던 사람과의 추억이다. 그는 9년 전 남편인 소설가 고(故) 김동리가 투병 중이었을 때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에세이 ‘한 남자를 사랑했네’를 펴냈었다. '그 집엔 세 식구가 살았다. 나이 많은 노인과 30년 연하의 젊은 아내, 그리고 부엌일을 하는 할머니. 함께 있는 것은 아내였으나, 남편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전처였다.' 그 남편과 아내가 어느 순간 서로의 생활 리듬에 섞여 들었다고 작가는 돌아본다. 삶의 안쪽 세상을 보다가 문득 발견한 자신의 안쪽 기억이다.
'우리도 뜰에 해바라기를 심어볼까? 나중에 씨앗을 받아둬야겠어요. 부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김지영 기자, 한국일보, 2002.7.13일 자

 

여행전문기자 최성민 씨(한겨레신문)는 자연주의자다. 자연에 길들여진 시골 출신이라서 20여년의 서울살이를 "하루 한 순간"도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자연을 찾아 나선다. 도시생활로 인해 빼앗긴 자연을 여행을 통해서라도 찾자는 것. 도시를 전원처럼 꾸미고 사는 선진국들과 달리 손바닥만한 녹지도 아파트숲으로 바꿔버리는 현실이기에 자연으로 가는 여행은 더더욱 필요하다.

자연의 섭리와 자연의 기(氣)로써, 반 생명적이고 이기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심성을 유발한 "자연차단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여름, 그 간의 여행기를 모아 <최성민의 자연주의 여행>(김영사)이라는 시리즈의 1,2권 "살맛 나는 세상 다녀오기"와 "섬,내가 섬이 되는 섬"을 선보였던 최 씨가 올 여름에도 후속 시리즈 세 권을 내놓았다. <자연주의 여행>1~3권인 <풍물기행 나를 찾아 떠난다>, <생명 긷는 샘물 여행>, <해외여행 이곳만은 가보자>(각 권 1만6천9백 원) 등이다.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인 <풍물기행~>은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리 땅 구석구석을 돌아본 결과물이다. 토속적인 삶의 멋과 여유,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삶의 얼개들과 인상적인 풍습, 각 지방의 토종들과 맛난 음식, 죽음과 토속 신앙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발길과 눈길이 닿았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삼척의 너와집,고암 이응로 화백을 향한 부인 박귀희 여사(2001년 작고)의 일편단심이 어려있는 수덕사 앞 수덕여관, 마을에 남은 마지막 순수 마당극인 충남 서산의 "박첨지놀이", 천년 세월의 풍상을 겪어온 지리산 천왕봉의 성모상... 섶다리와 강 고기잡이, 바다에서의 숭어잡이, 섬진강 연어와 금산 약초장 등 웬만해선 보기 힘든 토속적 풍경과 풍습도 책에서 되살렸다. 전국의 물맛 좋은 샘 50여 곳을 소개한 "~샘물여행"에는 물맛과 사람 사는 맛을 함께 담았다. 햇살 정기로 처녀도 잉태시킨다는 굴천사 석천, 봉황새가 마신 상서로운 샘물이라는 고성 건봉사의 예천, 죽어가는 물고기도 살려낸다는 장흥 보림사 약수, 오 씨 처녀가 왕건에 물을 떠주며 버들잎을 훑어 띄웠다는 나주 완사천... 샘물에 얽힌 이야기도 가지가지다. 샘 주변의 여행지와 전통음식도 넉넉하다.

"해외여행~"에서 최씨는 "지구촌"이라는 "별마을 공동체"로 시야를 넓힌다. 무려 14년간 전국을 누벼온 저자는 "너무 좁은 땅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버글대며 산다"며 지구촌으로 시야를 넓히자고 강조한다.
보신관광,퇴폐관광만 아니라면 해외여행에서는 돈 쓰는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현란한 풍광의 스칸디나비아 나라들,환상의 바다에 둘러싸인 태평양과 인도양의 섬들,처녀림을 간직한 북아메리카의 자연 등 그의 눈에 비친 지구촌의 자연과 삶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서화동 기자, 한국경제신문, 2002.8.7일자

예나 지금이나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공간 이동임과 동시에 시간 이동이다. 고대 로마를 향한 시공(時空) 이동. 거기에 여행자가 근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라면 자못 진지함을 넘어 심각해진다. 이미 전세계 교양인의 필독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괴테 지음<괴테의 이탈리아 기행>(푸른숲刊박영구 옮김)이 국내에도 번역돼 나왔다. 37세 때인 1786년9월3일 아무도 모르게 떠나려고 새벽 3시에 길을 나선 이 유명한 여행은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장장 1년 9개월 동안 샅샅이 탐구하는 여정이었다. 마차로 이탈리아 북부 볼차노에 접어들어 베네치아, 볼로냐,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찰리아 섬을 지난다. 고대 로마의 각종 유적과 예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암석 기후 식물 동물 등 자연까지도 그의 시야에 잡힌다. 물론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도 그에게는 중요한 사색 거리다. 점판암 사석(砂石) 강력 암반암(斑岩), 풍화, 충적토 등 지질학 용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오늘은 북위49도 선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괴테의 상상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표현이다. 청년기의 질풍 노도 같은 성정(性情)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담아냈던 괴테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인생의 뿌리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1786년 12월3일 로마에서 쓴 감상의 한 대목.『원래가 작고 또한 작은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어떻게 그런 고상한 것, 거대한 것, 완벽한 것들과 비견될 수 있겠는가.』로마를 본 충격을 그는『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된다』고 고백한다.

37세 괴테가 성숙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은 사라지고 산업의 일종인 관광만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 관광객의 눈이 아니라 여행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도 이 유명한 교양서가 덤으로 안겨주는 선물이다.
이한우 기자 / 조선일보 / 1998. 4. 9일자

 

광활한 아프리카 평원. 황금빛 노을이 대지를 적시는 동안 숲에서는 동물들의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약육강식. 그러나 초원은 곧 평화를 되찾는다. 아침이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기린과 영양떼를 만날 수 있다.
사진 작가 김중만(46) 씨. 그의 앵글은 지난 여름 내내 탄자니아의 동물들을 뒤쫓았다. 60일간의 장정이었다.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자란 그가 최근 검은 대륙의 동물들을 담은 사진집 [아프리카 여정](김영사,1만7천 원)을 펴냈다. 지난 1월 한국 최초로 선보인 아프리카 동물 사진집 '동물왕국'에 이어 두번째. 여행 일기도 곁들였다. 그는 한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종일 땡볕 아래서 땀을 흘리고 포효하는 사자의 7m 앞까지 바짝 다가가 근접 촬영했다.

사진집에 실린 1백15컷의 작품 모두 이 같은 열정의 산물이다. 먹이 감을 놓고 벌이는 맹수들의 혈투와 초원지대를 질주하는 얼룩말 무리. 흔들림 기법으로 찍은 그의 사진은 금방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역동적이다. 동물들의 눈빛을 클로즈업한 작품에서는 영혼의 숨결까지 느껴진다.
고두현, 한국경제신문, 2000.12.21일자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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