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남의 불행을 보면 내가 행복하다
한 연예인의 자살로 인터넷이 뜨겁다.
사망 원인은 사업상 끌어온 빚 때문이라고 언론이 추정하는 듯하다.
고인 나름대로 감내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있었을 터,
그 참담한 속을 알 길은 없다.
성급한 누리꾼들은 촛불집회 때문이네 MB 때문이네 원죄를 들먹이며 설전을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 그 틈바구니에 끼고싶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나도 공범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고인의 배우자가 문제의 촛불집회 발언 후 온국민이 일방적인 드잡이를 할 때
머리끄댕이를 잡은 손에 힘을 실어준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그리하여 화장품 쇼핑몰 사업이 좌초됐다면 더욱 그러하다.
어찌 되었건 우리 사회가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획일이다.
그 땐 안보였지만 지나고 보면 틈이 보인다.
그러나 늘상 죽은 자만 불쌍한 것이다.
죽어서 피하려고 했던 것, 항변하려고 했던 것은 죽음으로써 끝난 것이다.
사람들의 애틋한 동정도 언제 그랬냐는듯 금세 식은 채 거두어진다.
사는 게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아 못살게 되는 세상이 바야흐로 온 것이다.
일제히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잊는 일도 척척 해야 한다.
들불처럼 들끓으며 촛불집회한 게 언제라고 우리는 벌써 망각 중에 있다.
보름여 전에는 내가 아는 학원장이 자살했다.
결코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지역사회의 특성상 가까울 수도 있는 인연이었는데
운명의 끈은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그도 항간에 빚더미에 깔렸다는 설이 파다했다.
나도 오륙 년 전에 빚보증 잘못 서서 고생한 적 있지만
그 '때려죽일' 당사자가 결국 파산 신청하고 이혼하는 걸 보고 맘 아팠다.
어린 자식새끼 둘은 어찌 됐는지 무심하여 후문은 듣지 못했다.
사람이 죄가 아니라 돈이 죄였단 걸 한참 후에 알았다.
이래 저래 세상살기 힘겨운 시절이 온 걸까.
오늘처럼 남의 불행에 내가 행복하다고 느껴야 되는 삶이
조금은 처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