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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늙은이 냄새

무아. 2010. 3. 13. 09:32

통장을 재발급 받으러 은행에 다녀왔다.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은행 문 열자마자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우리 아파트가 지제역 부근 1번 국도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어

낮에 이 곳을 지나는 길이면 항상 태워갈 사람이 있나 주위를 살피곤 한다.

저기 왼쪽 차도 옆을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어뜩삐뜩 가고 있다.

"할머니, 아파트 가시면 타세요."

할머니가 희색을 보이며 길을 가로질러 와서는 하필 왼쪽 문을 열고 탄다.

마주오는 차가 길이 막혔다고 인정머리없이 크락숀을 울린다. 제길, 좀 기다려주면 잡아먹길 하나?
우리 아파트가 생기기 전부터 원래의 자연부락에 살고 있다는 할머니다.

"고맙네, 젊은이. 무릎 때문에 병원 갔다 오는 길인데 걷는 게 여간 고역이어야지."

"관절염이세요?"

우리 장모님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오래 고생하고 있어 아는 체를 한다.

갑자기 역한 냄새가 금세 차 안에 가득찬다.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시골 촌부의 냄새, 체취와 땀과 약과 인고의 세월과 또 다른 무엇이 짙게 배어있다.

창문을 내릴까 하다가 예의가 아니다 싶어 참는다.

"팔이 아픈 건 참아도 다리 아픈 건.... 궂은 날은 잠을 못자요. 늙으면 죽어야지."

"무슨 말씀이세요? 오래 사셔야죠."

"자식한테 짐이요."

".........."

쯧, 덥다.

오늘도 아침부터 어지간히 찌는 걸 보니 날씨가 더울 참인가 보다.

차가 마을 앞에 도착하자 할머니가 또 왼쪽 문을 열고 내릴 채비를 한다.

오른쪽으로 내리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려다 그만 둔다.

"잘 가소. 복 받게."

백미러를 보니 할머니가 한참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꼭 고향의 어머니처럼.

그제서야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가만 있자, 이 냄새....

내가 어려서부터 맡아온 익숙한 냄새라는 걸 금방 눈치챈다.

고향의 우리 어머니한테서 나는 냄새가 그렇다.

한창 성장기에는 부끄러워 애써 부인하고 싶었던...

올해 일흔 여섯, 일찌감치 홀로 되신 울 어머니도

시골 장에 가서 버스 시간 안맞으면 곧잘 남의 차 얻어타고 다닌다.

나 같은 놈 만날까 봐 겁난다.

뒤이어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민다.

 


출처 : 무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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